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단식 논쟁을 벌이십니다. 단식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요? 대 바실리우스 교부는 육식을 삼가는 것만 단식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참된 단식은 악습을 멀리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따지듯이 불평과 불만을 던집니다. 그들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하고 묻습니다. 그들은 단식의 참된 의미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단식을 하지 않는 것이 불평과 불만의 이유가 될 것인가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해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문제점만 찾으려하니 기쁘지도 감사하지도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수도생활은 어떻습니까? 매일같이 악습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제 자신을 반성해봅니다.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올바른 단식에 대해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마태 6,17-18)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단식은 보이기 위한 단식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당하신 주님의 사랑에 동참하는 단식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죄와 죽음은 사라지고 해방과 구원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은혜롭게도 매일의 성체성사를 통해 그 크신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찾아오십니다.

매일 예수님과 함께 구원의 식탁에 참여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 사랑에 대한 감사입니다. 죄인에게 끝없는 인내를 베푸시는 하느님 자비에 대한 찬양이요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 새로운 구원의 시대를 열어주셨고 이 구원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상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옛 사고방식대로는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질 구원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갇혀 있는 만큼 새로운 것을 볼 수 없게 됩니다.

단식을 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에 대한 답의 결론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르2,22)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의식을 전환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단순히 율법의 규정에 따라 단식을 할 때가 아닙니다. 단식을 하는 이유는 죄를 벗는 속죄의 행위나 회개의 표시로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애덕을 실천하는 행위로 하는 것이지 단순히 식사를 절제하거나 육식을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