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에서 성사에 대해서 배우면서 알게 된 세례성사의 효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세례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게 합니다. 그리고 둘째, 우리의 원죄와 본죄를 사해줍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창조주 하느님께서, 또 죄가 전혀 없으신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과 같이 세례를 받으십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은 분명히 말합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위대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세례를 받으셔야만 하셨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 누구보다 겸손하셨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겸손 그 자체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 겸손의 삶은 마구간에서 태어나 구유에 놓인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유에서 태어나신 순간부터 어쩌면 우리에게 먹혀질 존재로 세상에 오신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그리스도의 겸손함은 놀랍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체로 매일 그리스도를 마주합니다. 또한 그 성체를 손바닥 위에 올리기도 하고, 심지어 우리 입으로 그분을 우리 안에 모십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매일 미사성제 안에서 우리에게 먹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낮춤은 우리에게 먹혀질 정도로 아주 작은 것이 되었습니다.

필리피서 26절에서 7절까지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종의 모습을 취하시어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셔서 인간과 같이 되셨습니다. 인간처럼 살 필요가 없었는데도 인간처럼 사셨고,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음에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또한 우리 인간들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셨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하느님의 진리를 붙잡기 위해서는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고 강조하였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겸손은 그리스도인의 첫째가는 덕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창설 신부님께서는 1970813일 강론 말씀에서 우리는 점과 같이 겸손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겸손은 하느님을 완전히 모시게 되는 덕이다.”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히 겸손해져야 할 것입니다.

 

세례의 효과에 대해서 다시 상기해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 겸손해져야 할 것입니다. 겸손을 이해하면서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겸손이란 자신을 처지 이상으로 높이는 오만도, 그 이하로 낮추는 비굴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겸손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혹여 창설 신부님의 점과 같이 되라라는 말씀에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낮추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가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겸손이란 곧 하느님께 순명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 끝까지 순종하여 십자가 죽음에까지 이르셨습니다. 겸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낼 때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겸손한 수도자가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닮아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