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저의 꿈은 수도자나, 사제가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저의 꿈은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이 훌륭한 아빠, 자상한 남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촬영을 잘 하는 카메라 감독이었지요. 언젠가 말씀드렸을테지만, 저는 수도원에 오기 전에 방송 카메라 감독이었습니다. 한 달 수입 역시 웬만한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못지않게 많았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아빠, 남편, 카메라 감독으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수도원에 들어온 이유는 하느님께서 어떤 사건을 통해 한 순간에 저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건인지 말씀 드리기엔 강론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수도원으로 찾아오세요...) 그리고 그 사건은 하느님을, 또 예수님을 다시 보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리코의 장님 역시 예수님께 다시 보게 되길 청합니다. 다시 보게 되길 청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그 장님이 전에는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그 장님이 이미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시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장님과 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둘 다 이미 예수님을 알고 있었고, 그 예수님을 통해 다시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보게 된 예수님은 저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고, 또 이 공동체로 저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전에 알고 있었던 예수님은 제 가치관에 맞추어 놓은 예수님, 저에게 맞춰 줘야 하는 예수님이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늘 각자 자신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사건들과 사람들을 바라보고, 판단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다시 볼 것을 명령하십니다. 바로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시선으로 말입니다. 유한한 인간의 시선에서는 결국 나의 가치관이 판단의 기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보편적인 기준, 바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 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예수님의 시선과 가치관으로 바라보게끔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본다는 표현을 영어 성경에서 찾아보면, 장님이 청하는 방식과 예수님이 보아라하고 말씀하시는 것이 다릅니다. 장님은 예수님께 Let me see!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see가 아닌 sight라는 단어로써 장님의 눈을 뜨여 주십니다. see라는 단어는 사물이나 상황을 보는 보다 생물학적인 ()’을 뜻합니다. 반면 sight라는 단어는 시야, 견지, 견해, 판단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시 보게 해달라는 장님의 청을 들어 예수님은 그 장님에게 당신의 시야를 되돌려(receive sight) 주십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상황이나 사건들을 보다 넓은 시각으로, 멀리 내다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넓고 멀리 내다보라는 것은 나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눈으로, 예수님의 시각으로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본다는 것은 내 앞에 보이는 피사체를 보는 생물학적인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만, 각자가 만나는 사건과 사람들의 진면목, 혹은 숨은 뜻을 파악할 때도 본다.’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가 이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를 다시 보게 되었다.’ 혹은 그 때 그 사건이 ○○한 뜻인 줄 알았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한 뜻이군..’이라고 말하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청하면 그분께서는 당신의 방식으로 당신이 원하시는 때에 우리에게 응답해 주십니다. 아빠가 되고 싶은, 남편이 되고 싶은 저의 꿈은 여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저의 시선에서 보는 하느님의, 예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시선으로 제가 겪은 경험들을 바라보면 예수님께서 저에게 바라시는 것은 당신의 도구로서 한평생을 예수님께 봉헌되어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Dad(아빠)가 아닌 Father(사제)를 꿈꿉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께서는 한 순간에 저의 모든 것을 앗아간 것이 아니라 다시 주시기 위해 잠시 가져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주신 것은 그 전에 가지고 있던 것에 비할 수 없을만큼 큰 가치를 지닌 것들입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