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 우리의 빛


이번 추석에 휴가를 나가 본당에 미사가 없어서 근처 성당에 갔습니다. 마침 청소년 미사였고 성당입구부터 아이들의 신나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조용히 가장 구석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옆을 바라보니 중학교2-3학년 정도 보이는 한 여학생이 혼자 핸드폰을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순간 아이들이 앉아있는 자리는 앞자리이니 핸드폰을 할 수 없기에 이 구석진 자리에 혼자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도 성당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기뜩하다고 생각했으나 끊임없이 휴대폰만 바라보는 아이가 불편했습니다. 그리고 미사가 시작되었고 그러자 마자 아이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정말 큰 목소리로 성가를 열심히 부르고 미사가 끝날 때까지 단 한순간도 제대에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성당에 나오면서 이렇게 멋진 아이를 순간적인 판단으로 그 아이를 규정한 제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수종을 앓는 이를 안식일에 고쳐주십니다. 이에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에 주님만을 찬양하지 않고 다른 이에게 관심을 갖고 함께 아파하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리고 아주 적절한 비유를 통해 바리사이들의 관점을 바꾸어 주시려 노력하십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당에 들어가자마자 잠시라도 휴대폰을 놓치 않은 아이를 바리사이와 같은 마음으로 바라 본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매일 복음을 읽고 기도를 하지만 정작 수도원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 앞에 섰을 때 나의 시선과 생각은 거룩한 성당에서 조차 이웃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모습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태도가 교회가 끊임없이 주의하라고 이야기한 영적 세속성에 빠져 있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영적 세속성에 대해 고민해 보려합니다.

 교회는 분명하게 바라사이의 태도를 영적 세속성을 추구하는 자들의 모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규범이라는 틀에 갇히어 특정한 가톨릭 양식을 완고하게 집착하고 자아도취적이며 엘리트주의에 빠진 자들이 바로 영적 세속성을 추구하는 자이며 누구나 이러한 유혹에 충분히 빠질 수 있기에 끊임없이 깨어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유혹이 얼마나 쉽게 다가오는 지 잘 알고 있습니다. 신앙심이라는 외양 뒤에, 교회라는 사랑의 겉모습 뒤에 숨어서 그리스도가 드러남이 아니라 인간적인 영광과 개인의 안녕을 추구하려는 속삭임이 하루에도 수도 없이 나를 힘들게 만듭니다. 더욱 구체적으로 나의 영광을 위해 그 사람을 판단하고 그 판단을 검토하고 검증하는 데에 자신의 힘을 소진해 버리는 것이 바로 영적 세속성에 빠져든 상태라고 교회는 이야기합니다.

 타인을 만나게 될 때 분석하고 분류하는 생각은 자연스러운 행동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이 그리스도를 닮은 참다운 관심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복음을 읽고 그리스도의 몸을 모시며 잠드는 순간까지 기도합니다. 때로는 이러한 수도생활이 재미없고 지루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순한 생활이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세상에 가시적으로 증거 하게 하는 가장 큰 힘입니다.

언젠가 그 아이를 만났던 그 성당을 꼭 가려합니다. 그리고 함께 큰 목소리로 성가를 불렀던 그 때를 끊임없이 기억하려 합니다. 그 기억을 통해서 세속적인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려합니다. 오늘 하루 수사님들도 참다운 관심으로 세상과 이웃을 바라보고 있는지 살펴보시는 하루가 되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