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중심에서 하느님과 이웃 중심으로

 


 

    우리 인간은 타고난 나약한 본성으로 말미암아 자주 자기 자신에게로 기울어져서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측면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우리는 그러한 점을 세월의 흐름을 통해서도 감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에는 마치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해서 돌아가는 것인 냥 의욕도 넘치고 자기주장과 고집도 강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레 몸과 마음에 힘이 빠지면서 점차 자신이 세상의 작은 일원임을 보다 분명히 깨달아가게 됩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점은, 요즘처럼 물질만능주의가 날로 팽배해져 가는 세상에서 경제적 능력이 없는 노인들이 느끼는 소외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날이 늘어나는 요양원들이 그러한 점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등장하는 나병환자도 공동체와 격리되어 살면서 무척 큰 소외감을 느꼈을 텐데요, 당시의 유다인들은 어떤 사람이 나병에 걸리면 자신이 지은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벌을 받는 것이라 여겼다고 합니다(2열왕 15,5; 2역대 26,19-21.23 참조).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항상 하느님 아버지를 당신 삶의 가장 중심에 두고 사셨기 때문에, 대다수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에 휩쓸리지 않으시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하시고자 하는그 뜻에 따라 조건 없는 사랑으로 나병환자를 치유해주십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항상 자신보다 이웃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사셨기에 나병환자에 대한 사랑의 연민을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옮기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위험천만한 나병환자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신의 손을 갖다 대시며 치유해주셨던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치유해주시고 나서 그에게 치유 받은 것에 대하여 침묵을 당부하신 것도, 그가 갑자기 받은 은총에 취해서 스스로 교만해지는 것을 방지하시려는 속 깊은 뜻이셨을 것입니다. 반면에 치유 받은 나병환자는 그런 예수님의 깊은 속도 모르고서, 치유 받은 기쁨에 빠져서는 예수님으로부터 치유 받은 사실을 널리 알리고 퍼뜨리고 다님으로써 예수님의 활동에 피해를 끼칩니다.


    그와 같이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주님께서는, 우리가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하느님과 이웃 중심으로 살아가도록 이끌어주십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바로 당신께서 우리 모두에게 하시고자 하는뜻임을 알려주시고자 하시는 것 같습니다. 특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많은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는 이 때에, 우리 모두는 인간중심으로 살면서 공동의 집인 이 아름다운 지구를 마구 훼손시켰던 부끄러운 과오들을 심각하게 반성하도록 주님으로부터 초대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되도록 많은 것들을 누리려고 하고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서 여러 다양한 활동들을 향유하려고 하는데요, 하지만 그러한 것들에 결코 우리의 참된 행복과 참 자아가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는뜻에 따라 그분께서 이끌어주시는 대로 기꺼이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하느님과 이웃들에게로 나아감에 따라, 끊임없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행복을 계속해서 새롭게 맛보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1코린 15,10)라는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우리는 여태까지 그렇게 살면서 끊임없이 새롭게 변화되어 온 바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그러한 점을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그와 관련해서 저희 수도회 영성 중에 주님과의 온전한 합일을 뜻하는 면형무아(麵形無我)”가 있습니다. 이는 성체성사 때 실체변화를 통해서 온전히 예수님의 몸과 하나로 결합되는 제병처럼 우리도 성령 안에서 주님의 뜻에 어긋나는 거짓된 자아를 말끔히 비움으로써 주님과 온전히 하나로 결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아라고 해서 결코 허무(虛無)”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들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비우는 충만한 사랑 안에서 참된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신앙의 신비는 너무도 역설적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모두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 전에,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 마르 15,34)라고 부르짖으셨지만, 그 부르짖음은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라는 신앙고백과도 같았지요.

    그리고 이어서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라고 말씀하시고 나서 마지막 숨을 거두셨듯이, 그것은 다름 아닌 하느님 아버지께서 하시고자 하는뜻에 한평생 당신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셨던 그 숭고한 삶의 열매였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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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1코린 1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