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정의 의미



    제가 아는 몇몇 수도회들에서는 공동체 식구들이 함께 피정을 하며 예수님의 성탄과 부활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전례력으로 가장 중요한 시점을 준비된 마음으로 잘 맞이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수도자 또는 성직자의 길을 걷는 이들이 종신서원이나 사제서품을 앞두고 피정을 하며 준비기간을 가지는 것처럼, 어떤 큰 일에 앞서 그 일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도록 이끌어주었고, 예수님께서도 본격적으로 공생활을 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광야에서 피정 기간을 가지셨지요. 오늘 복음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성모님께서도 예수님을 낳아드리고 그분의 십자가 수난에 동참하는 여정을 시작하는 큰 일을 앞두시고서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잠시 떨어져 친척 엘리사벳의 집에서 석 달 동안 준비하는 기간이 필요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처럼 어떤 큰 일에 앞서 따로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성모님의 모습을 보면 평소의 삶에서부터 늘 깨어 기도하심으로써 준비된 삶을 사셨음을 알게 되어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 당시 유대 사회의 법과 관습 상, 약혼한 상태에서 임신을 하게 되면 간음이라는 누명을 쓰고 돌로 쳐 죽이는 형에 처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성모님께서는 큰 망설임 없이 “즉각적으로” 하느님의 계획에 순종하고 협조할 뜻을 밝히셨지요. 만약 믿음이 약하고 준비가 덜 된 사람이었다면 바로 “멘붕” 상태가 되어 천사에게 좀 더 고민할 시간을 주십사고 청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더욱이, 오늘 복음의 성모님께서 하느님께 당신의 신앙을 고백하신 찬양의 노래(Magnificat 마니피캇)를 보면, 성모님께서 “온 마음으로”, 온전히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셨을 알게 됩니다. 뜻밖의 하느님의 놀라운 계획 앞에서 의심하거나  불평하고 원망하지 않으심은 물론, 오히려 당신을 복되다고 일컬으시며 당신의 마음이 기뻐 뛴다고 고백하시니 말입니다! 요즘 말로 참으로 “찐 신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은 성모님의 살아있는 믿음, 진짜 신앙을 우리도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따로 시간을 내어 피정을 하고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을 만나 뵙고 하느님과 함께 머물기 위한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하겠지만, 일상의 삶에서 보다 더 충실히 하느님을 따르기 위해서 심신을 재충전하고 영혼을 “훈련”하며 준비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렇게 훈련한 다음, 다시 일상의 삶으로 나아가 훈련하며 준비한 것들을 “실습”하고, 그러한 과정을 계속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우리는 훈련하고 실습한 내용을 점점 진짜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시켜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성모님께서 단지 마음으로 신앙을 받아들이시고 간직하신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예수님을 세상에 낳아드리시고 “온 몸으로” 그분의 십자가 사랑에 동참하시며 협조해드리셨음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된 것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살아있는 생생한 삶으로 “육화”되어 “증거”되기 마련일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순교자들께서 사셨던 삶처럼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삶은 성모님과 순교자들의 삶처럼 보다 더 충실히, 보다 더 온전하고 깊게 주님을 따르기 위한 “영원한 기도”, “영원한 피정”, “영원한 수련”의 여정이 아닌가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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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1코린 1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