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우스 매일 죽음연습

 

19.1. 아들들이여, 그러므로 우리는 금욕수행에 전념하고 영적 무기력(아케디아)에 빠지지 않도록 합시다. 이 싸움에서 우리에게는 주님이 계시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하느님은 선을 선택한 사람과 함께 선으로 협력하신다(로마 8,28 참조)고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습니다. 2. 소홀함에 빠지지 않도록 나는 날마다 죽음을 마주하고 있습니다.”(1코린 15,31)라고 한 사도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일 우리도 그렇게 산다면, 매일 죽어야 하는 것처럼 산다면 죄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 3. 이것은 매일 우리가 깨어날 때 저녁 때까지 살지 못하리라고 생각해야함을, 그리고 다시 침대에 눕는 순간에 우리가 더 이상 깨어나지 못하리라고 생각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 생명은 본성상 불확실하고, 날마다 신적 섭리를 통해서 측정됩니다. 4. 만일 우리가 그렇게 처신하고 매일 그렇게 생활한다면,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것이고 전혀 욕망으로 괴로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화내지 않고 지상에 재물을 쌓아두지도 않고(마태 6,19 참조), 매일 죽음을 기다리면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모두에게 모든 것을 용서할 것입니다. 5. 우리는 여성에 대한 욕망이나 다른 불순한 쾌락의 지배를 받지 않고 심판의 날을 눈앞에 떠올리며 항상 싸우면서 사라질 것들에서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실 항상 큰 두려움과 형벌의 위험은 쾌락의 달콤함을 사라지게 하고 흔들리는 영혼을 한층 견고하게 합니다.

 

이는 죽는 법을 매일 연습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이 최후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하여 날마다 기회를 주시는데, 저녁이면 잠자는 것이 죽음을 생각하게 하고 죽음이 오기 전에 신비적으로 죽어야 할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침대가 무덤이 아니겠습니까?

아침에 일어남은 예수님 무덤을 깨치고 부활하심과 같이 부활을 상징하고, 신비적으로 밤에 죽었으면 사랑이 가득 찬 빛난 아침이 될 것입니다.

수도원에서 일과를 마치고 대침묵으로 들어가는 것은 침묵의 절정입니다.

이는 신비적으로 죽어서 침묵으로 들어감을 상징하는데 이때 연습을 해야 합니다. 훈련은 순간순간 하여야 하는데 시시각각 당하는 역경과 괴로움을 잘 받아야 합니다. 참아 받으면 받을수록 달라집니다.

 

- 밤에 잠을 자는 것이 죽음이요, 아침에 일어남이 부활이라는 것을 모르는 수도자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대부분 다 알지요. 그러나 이것을 정말로 실천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좁은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매일매일 연습합시다. 그러면 시시각각 당하는 역경과 괴로움을 인내하게 됩니다. 신기하게도 그것이 가능해지고, 신비롭게도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것이 느껴집니다. 죽음의 죽음은 신비입니다. 면형은 5차원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신비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성의노력을 가지고 노력합시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의 애쓰는 모습을 보시고 도와주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3. 십자가의 비결

죽음의 죽음이 되려면, 먼저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질 지어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 매일매일 죽음의 죽음 행진을 해야 합니다. 그 행진의 시작은 나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나 하고 싶은 것에서 죽으려면, 당연히 자신을 버려야 하겠지요. 그리고 고통도 감수해야 하는 것이고요. 십자가야말로 우리가 따라야 할 본보기이지요.

 

사람이 자기 십자가를 감수 희생하면 할수록 덕능(德能)이 자라서,

하늘의 새 빛과 힘이 내리고 역경에는 천신들이 오시는도다.

빛으로 하느님을 뵈옵고, 힘으로 난관(難關)을 넘어가고,

빛이 더욱 밝을수록 하느님을 더 잘 알고,

힘이 더욱 셀수록 모든 난관을 넘어가는도다.

- 어떤 십자가를 감수인내, 희생하고 계십니까? 당신에게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나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이 나의 십자가가 아닐까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의 십자가가 아닐까요? 헌데 저는 지금까지 쉴새없이 그들을 평가, 판단하고 단죄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그들을 나쁘게 이야기하고, 사람들과 험담하고 살아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이 평가, 판단, 단죄가 중지되고, 나에게 주어진 모든 십자가를 감수인내 할 때,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됨을 알게 되고, 희생하면 희생할수록 우리의 선행하는 능력은 자라나서 하늘까지 이르게 됩니다. 대월의 경지에 초대되는 것이지요. 빛이 더욱 밝아질수록 우리는 더욱 더 주님을 잘 알게 되고, 우리의 십자가도 더욱 더 잘 지고 넘어가게 됩니다.

 

십자가를 견디어 낼수록 짐은 가벼워지고 멍에는 달고 달아라.(마태 11,30)

만복만락(萬福萬樂)의 비결은 참아 받음이니,

참아 받음이 희생이요, 희생은 하느님 제일 좋아하시는 수라로다.

- 요즘 어린 아이들에게 참고 인내하라는 교육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른들도 참고 인내하고 싶지 않아합니다. 인내와 희생을 싫어하는 사회인 듯 합니다.

희생은 하느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음식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에 동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