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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1017/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1독서 : 에페 1,15-23 / 복음 : 루카 12,8-12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루카 12,10)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자라는 말씀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는 인간의 죄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용서받기를 거부한 사람은 용서받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의미에 대해서 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설명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한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를 받아들이기를 일부러 거부하는 사람은 자기 죄의 용서와 성령의 구원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완고함은 죽을 때까지 회개하지 않게 하고 영원한 파멸로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864)

완고함은 영원한 파멸로 이끌어 갈 수 있다고 표현합니다. ‘파멸로 이끈다가 아니라, ‘파멸의 가능성이 있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성인들을 선포하지만 지옥 형벌을 받는 사람을 한 번도 선포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느님의 뜻을 완고하게 거부하는 이들에게 영원한 단죄의 가능성을 분명하게 경고합니다.

 

성경 안에서 유다의 행동에서 완고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마태오 복음 273절을 보면 그때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는 그분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신 것을 보고 뉘우치고서는, 그 은돈 서른 닢을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돌려주었다.”라고 전합니다. 유다는 뉘우치는 마음이 있었지만, 예수님의 용서를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 죽게 됩니다. 유다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동안에, 극악무도한 죄인도 용서 받는 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의 용서를 믿고, 한 순간이라도 멀리서 미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기만 하였더라도, 예수님 용서의 눈길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유다는 그저 예수님을 보았다면, 예수님의 자비와 용서의 눈길을 만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다는 절망했습니다. 유다는 하느님께서 자기를 구원해 주시고 구원에 이르도록 도와주시거나 죄를 용서해 주리라는 희망을 버렸습니다. 절망은 하느님의 선함, 약속에 성실하신 의로움, 그분의 자비로움을 거슬렀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091

 

다음으로, 예수님께 대한 희망을 봅니다. 예수님의 용서와 관련해서, 오래 전에 고해성사를 보았을 때가 기억이 납니다. 저는 성사를 보았지만, 예수님의 용서를 믿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뉘우치지 못했는데, 용서 받을 수 있을까?란 자책감에 한동안 시간을 보냈습니다. 힘든 마음 가운데, “얘야,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마르 2,5)라는 말씀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족한 고백이어도 용서해 주시는데,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만약, 끊임없이 예수님의 용서를 믿지 못한다면,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짓는 것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 구원, 용서 해방 등을 믿고, 더 이상 성령을 모독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구원을 믿는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들을 믿지 않고 거부한다면,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받아 주지 못하십니다. 종종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의 인간적인 마음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통이 크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우도의 죽기 직전의 회개를 들으시고,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하시며,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우도는 단 한마디의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 예수님께서는 단 한마디 믿음을 고백한 우도에게 구원의 낙원을 약속하심을 기억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 구원, 용서를 있는 그대로 믿으려고 합니다. 인간적인 한계로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바라시는대로, 성령의 감도에 따라, 성령의 뜻에 늘 인도받고자 합니다.

 

유튜브 영상

https://youtu.be/cUaxKsQq8uE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1코린 7,32)

무엇이든지 그가 이르는대로 하시오. (200주년 신약성서 요한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