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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중요한 선택은 식별의 대상입니다

1015/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1독서 : 에페 1,1-10 / 복음 : 루카 11,47-54

 

오늘은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루카 11,52) 이 말씀을 중심으로 보고자 합니다. 마태오 복음에서도 같은 내용을 조금 다르게 표현했습니다.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앟는다.”(마태 23,13) 마태오의 표현을 보면서, 하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을 잠가버렸다고 하여 좀더 표현이 명확합니다. 율법 교사들은 지식의 열쇠를 치워버렸고,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렸습니다.

 

그들은 성서를 해석하고 하느님의 뜻을 해설하는 일에 있어서 배타적인 권리를 주장하였습니다. 이는 하느님을 아는 지식과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에 대한 독점권을 자기들에게 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고 그분의 메시지와 사명을 통하여 지식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방해하였습니다. 율법 교사는 하느님이 아닌 자신을 지혜의 중심으로 삼았다는 데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 교사와 예언자 중 가장 위대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살해하였습니다. 끝내 예수님을 알지 못한 율법 학자들을 보며, 우리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음에 공감하게 됩니다. 오늘은 일상에서 예수님을 식별하는 많은 방법 중에 한 가지를 봅니다.


마르코 이반 루프니크의 식별이란 책을 참고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들을 선택하고 결정합니다. 어떤 선택들, 예를 들어 결혼, 사제직, 수도서원 등은 결정적 선택들입니다. 이런 선택들은 돌이킬 수 없다는 특성 때문에 영적 여정에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이런 선택을 할 때는 분명 영적 싸움이 더 치열할 것입니다. 악마가 우리에게 하느님 뜻을 실현하지 못하게 하고 그 대신 우리 자신의 뜻을 택하도록 충동질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한 선택은 물론이고,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개인적 영적 여정에 관계 있는,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중요한 선택이 식별의 대상입니다. 예를 들면 집을 지을 것인지,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지, 직업이나 일할 장소를 바꿀 것인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것인지 등입니다.

성 이냐시오가 선택을 하기 위한 방식을 전해줍니다. 진실한 기도의 자세를 유지하면서 죽음의 시간을 맞는 자신을 상상합니다. 그때는 더 이상 되돌아가거나 바꾸거나 다시 시도하거나 심지어 속임수를 쓸 가능성조차 없으며, 내 삶의 모든 것들이 결정적으로 확실히 드러납니다. 그 순간을 맞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주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고찰하고 있는 선택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렸기를 그 순간 바라게 될지 생각해 봅니다. 그대로 결정합니다. 죽음을 떠올리며 하는 이 훈련은 그리스도교 전통을 계승하는 위대한 영적 스승들에 의해 대단히 높이 평가되곤 했습니다. 이러한 훈련으로 절제와 같은 중요한 요소들이 부각되고 속임수나 위선이 줄어드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계속 기도의 대화 속에 머물면서, 결정하려 하는 그 문제에 대한 심판의 순간을 맞을 때 하느님 앞에 되고 싶은 대로의 나 자신을 상상합니다. 역사의 심판자이신 주님 앞에서 심판의 순간을 맞을 때 바라고 싶은 그 내용을 오늘 하려고 하는 선택에 적용합니다. 이 단계를 거쳐 선택을 하고 나서 주님 앞에 나아가 내가 한 선택이 주님의 마음에 드신다면 받아주시기를 지극히 겸손하게 청함으로써 기도를 마무리합니다.(M.I. 루프니크, 식별, 바오로딸, 2014, 263-278)

 

죽음을 앞두고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우리에게 오늘의 삶을 진실되게 해줍니다. 오늘이 죽는 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율법 학자들은 현세에서 자기들의 나라를 유지하려고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그 결과로 실제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예루살렘의 파괴로 끝났습니다. 지금 우리는 현세를 살고 있지만, 죽음을 기억하며, 영원한 생명을 사는 것을 선택해야 함을 기억합니다. 죽음과 영원한 생명을 기억하면 진실된 삶을 살게 됩니다. 사소한 갈등 앞에서 굳이 내가 꼭 이기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려운 부탁을 받아도 기꺼이 기쁘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현세에서의 영원한 생명이 아닌, 하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그리워 합니다. 오늘의 선택은 죽음 앞에 예수님을 선택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유튜브 영상

https://youtu.be/fyvOiFeD-8Y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1코린 7,32)

무엇이든지 그가 이르는대로 하시오. (200주년 신약성서 요한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