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쩐 안 주웅 (락) 안드레아 (1795~1839, 사제)

 


    순교일: 18391221

     시복일: 1900527

     시성일: 1988619

 


    성 쩐 안 주웅(Trần An Dũng) 안드레아는 1795년경에 지금의 베트남 박닝성()인 낑박시내(市內)에서 태어났다. 부모를 따라 께쩌(지금의 하노이)로 이사한 다음 천주교에 입교하여 께빙 소신학교 장상인 찡 란 선교사제와 함께 본당에서 생활하였다.


    쩐 안 주웅 안드레아는 신기할 정도로 영리하여 어떠한 글을 보든지 두 번 만에 암기하였고 한문과 라틴어에 능통하였다. 또한 밝고 온화한 성품을 지닌 데다 예의까지 발라 관원들과 학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는 신학교에서 삼 년 동안 수학한 다음, 1823315일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사제로 서품된 후 주웅 안드레아 신부는 넉 달 동안 동쭈오이 본당에서 키엣 신부를 도와 일하였고, 삼 년간 티 신부의 보좌로 일한 다음, 썬미엥 본당에서 주옛 신부의 보좌로 일하였다. 주 주교는 주웅 신부를 서너 달 정도 타잉 지역에서 주임신부로 일하게 한 다음, 께덤 본당 주임신부로 임명하였다. 그 때 주웅 신부는 이미 마흔 살이 넘었다.


    주웅 신부는 매우 열정적으로 설교하였고 사리분별이 명확하고 행동이 조신하여 어느 신자든 그에게 순명하였다. 또한 옷차림은 간소하였으며, 연중 금식이 규정된 날을 포함하여 사순 기간 내내 금식 규정을 지켰다.


    박해 기간 중에도 주웅 신부는 가난한 이들을 방문하여 도와주는 일을 열심히 하였다. 중풍병자를 도와주러 갈 때에는 관병에게 잡힐 것을 염려하여 복사를 데려가지 않았다. 그리고 신학생들을 시켜 공소들을 방문하여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보도록 권면하게 하였다.


    주웅 신부는 께수이 마을에 사제관을 세운지 7, 8개월 정도 되었을 무렵에 체포되어 관리에게 이송되었다. 그 당시 틴 본당 회장은 은괴 여섯 괴를 돈트의 하오 카잉 현관(縣官)에게 건네주면서 주웅 신부의 사형 선고를 면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카잉 현관은 은 네 괴를 본인이 가지고 두 괴만을 관리에게 주면서, 자신의 외삼촌이 께수이에서 미사를 보다가 관병에게 잡혔으니 외삼촌을 풀어달라고 청하였다. 카잉 현관이 주웅 신부가 자신의 외삼촌이라고 하였기에 관리가 주웅 신부를 풀어줬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쩐 안 주웅 신부는 개명을 해야 했다. (이름 마지막에 ’(Lạc)을 첨가)


    그 후에 주웅 락 신부는 티 신부와 함께 고해성사를 주러 갔을 때 심복 넷과 동행한 마을 관리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두 신부는 교우들이 관리에게 돈을 쓴 덕분에 풀려났지만, 18391010일에 현관에게 또다시 붙잡히게 되었다.


    한 교우가 자신의 전 재산을 저당 잡아 얻게 되는 돈으로 두 신부를 석방시키려고 결심하고는 락 신부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어르신! 어르신께서 순교하시면 어르신 혼자서 천당에 오르실 것입니다. 만약 어르신께서 남아계신다면 우리 교우들은 어르신의 덕을 보게 될 것입니다. 부디 재고하여 주십시오.” 관리의 심복도 락 신부에게 돈을 주시면 언제든지 저희는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나오게 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락 신부는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금하면서 말하였다. “내가 이번에 잡힌 것이 세 번째인데, 이렇게 되도록 예정하신 천주님의 뜻에 순명하기로 결심하였으니, 나를 다시 구하려 하지 마라.”


    사흘 뒤에 현관이 두 신부를 께쩌로 보냈다. ()에 도착하여 두 신부는 세 번에 걸쳐 심문을 받았다. 재판관이 두 신부에게 십자가를 밟고 지나가면 풀어주겠다고 시험했지만, 신부들은 완강히 거부하였다. 두 신부는 자신들이 곧 사형 당할 것임을 직감하고는 항구히 경문을 외며 기도하였다. 락 신부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티 신부를 위로하였다. “고통을 참아 받으십시오. 그러면 조금 있다가 하느님 아버지를 만나 뵙게 될 것입니다.”


    18391116일에 틴 회장은 쩐 신부에게 부탁하여 두 신부에게 성체를 영하게 해주었다. 18391231일에 두 신부는 꺼우저이문 앞 광장으로 보내졌다. 락 신부는 형을 집행하는 관리에게 말하였다. “관리가 당신들에게 지시했으니 주저 말고 형을 집행하시오. 다만 나에게 잠시만 허락해주시오.” 그런 다음 락 신부는 두 손을 모으고 잠시 기도하였다.


    형을 집행하는 관리가 락 신부의 머리카락을 잡아 위로 올리자, 락 신부는 목을 치켜들고는 이렇게 하면 적당합니까?”라고 물었다. 관리는 그 정도면 적당하다고 답하였다. 사형 신호를 주는 관리의 신호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형을 집행하는 관리가 락 신부와 티 신부의 목을 베었다. 교우들이 두 순교자의 시신을 거두어 께서로 옮겨서 그곳에 모셨다.


    - 출처 : 베트남 순교성인행전(Hạnh Các Thánh Tử Đạo Việt Nam), 베트남주교회의, 2018, 74~76쪽.

 

 

    묵상

 

    가톨릭 전례력으로 해마다 1124일에 베트남의 117위 순교성인들인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념하며 그분들의 전구를 청합니다.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의 정식 성함을 베트남어 발음대로 옮기면 쩐 안 주웅 락”(Trần An Dũng Lạc)이 됩니다


    쩐 안 주웅 락 안드레아 신부님의 총명함은 마치 우리나라의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을 연상케 하고, 그분의 용덕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많이 닮았습니다.


    주웅 락 신부님은 관리에게 붙잡혔다가 풀려나기를 두 번 반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붙잡히셨을 때는 하느님과 교회를 위하여 순교하는 것이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임을 알아차리시고는 교우들에게 자신을 다시 구하려 하지 말라고 다음과 같이 엄중히 이르셨지요. “이번에 잡힌 것이 세 번째인데, 이렇게 되도록 예정하신 천주님의 뜻에 순명하기로 결심하였으니, 나를 다시 구하려 하지 마라.” 그런 신부님의 모습에서 하느님의 뜻에 겸손하게 순종하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의 형상을 볼 수 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 이사 50,5-7

 

    그처럼 여전히 풀려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자진해서 순교의 길을 택하셨던 모습은 또한 주문모 야고보 신부님과 앵베르 라우렌시오 주교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한 모습은 곧, 자원으로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에페 5,2) 그리스도 예수님의 모습과 무척 닮았습니다. 우리도 주웅 락 신부님처럼 일상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십자가들을 회피하지 않고 하느님과 이웃들을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자원으로 봉헌해드릴 수 있는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성 쩐 안 주웅 락 안드레아와 동료 순교자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으소서! 아멘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