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을 부르시는 예수님.jpg


연중 제6주간 목요일 

1독서 : 야고 2,1-9 / 복음 : 마르 8,27-33

      

+. 찬미예수님

   초등학교 때 주일학교를 빼먹고 어머니 몰래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놀러간 적이 있습니다. 신나게 놀다가 팔이 부러졌습니다. 그때부터 주일 학교를 빼먹고 놀러가기만 하면 꼭 그 주에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머리가 터지거나, 손이 찢어지거나 정말 한 번도 그냥 넘어가는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사건들이 쌓이다보니 저에게 하느님과 예수님은 잘못하면 벌주시는 엄한 분으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성당활동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고 수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신원을 알려 주시며, 왜곡된 메시아 상을 바로 잡아 주십니다. 군중들이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 또는 예언자로 알고 있었던 반면 베드로는 예수님의 신원을 그리스도라고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이내 예수님께 꾸지람을 듣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정도로 성숙한 제자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지만, 그의 메시아 관은 한 쪽으로 치우쳐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에게 메시아란 고난을 겪을 수 없고, 사람들의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할 수 없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놀라운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그런 메시아상이 베드로에게는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연중시기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졌던 복음 중에는 예수님의 기적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이 모든 여정을 동행했던 베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오늘 베드로가 예수님께 보인 행동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당신에 대해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한쪽으로 치우치고 왜곡된 메시아 상을 바로 잡아 주십니다.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알려주신 메시아 상은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전지 전능한 메시아의 모습이 아닌 소박한 인간 존재로써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런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그분께서 보여주시는 메시아 상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바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와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시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기억하십니까?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 두 제자는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향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예수님은 힘이 있는 예언자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실 메시아로 자리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의 죽음으로 그들의 메시아상은 무너졌고 그들은 결국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향했습니다. 같은 시기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이 묻힌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엠마오로 향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수고를 하셔야 했지만, 마리아 막달레나에게는 마리아야!”라는 한마디의 말로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한마디의 말로도 충분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그분과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형성된 메시아 상은 그분의 현존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께서 오늘 제자들과 우리에게 이렇게 당신의 상을 바로잡아 주시는 것은 인격적인 만남으로의 초대입니다. 같은 눈높이에서 우리와 함께 눈을 맞추고 함께 호흡하고 현존하고 계시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시고 우리를 그 자리로 초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