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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2사무 11,1-4ㄱㄷ.5-10.13-17 

복음: 마르 4,26-34

 

+. 찬미예수님

   저희 가족은 일 년에 한번 정도 다 같이 한자리에 모일 때가 있습니다. 저희 삼남매는 모두 수도자라서 만나면 각자가 수도원에서 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저보다 수도생활을 먼저 시작한 동생 수녀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동생들은 우스개소리로 이런 이야기들을 저에게 하곤 했습니다. 초기 양성기 때에는 오빤 아직 철부지 지원자라서 잘 몰라라는 말을 자주 들었고, 유기서원기에 머물 때에는 어찌 유기서원자가 종신서원자의 마음을 알겠느뇨?”라는 농담을 듣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작년 종신 서원을 했을 때에는 철부지 지원자가 종신선원을 하다니! 이건 하늘나라 신비다 신비!”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올해에는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보니 동생들과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나서 나누어 보았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저절로 자라나는 씨앗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 나라에 대해 설명해주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저절로 자라는 씨앗과 같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리면 싹이 터서 자라고, 줄기가 나오고, 이삭이 나오고, 열매를 맺습니다. 씨를 뿌리는 일은 우리 눈에 보이지만, 씨앗이 자라나는 과정은 마치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 같아 보입니다. 사람은 씨를 뿌리고 그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하시는데, 이 과정을 통해 드러나듯이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과 인간이 함께해 나아가는 공동의 여정임을 오늘 복음은 전합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공을 들이고 정성을 쏟으며 진행됩니다. 그렇게 당신의 입김을 불어넣으며 생명을 움직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정 가운데 하느님 나라가 있다고 하십니다.

 

  오늘은 성 요한보스코 축일입니다. 성인께서는 아주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학교조차 다닐 수 없었던 성인은 어릴 적 꿈에 성모님께서 나타나셔서 가난한 소년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가르쳐 주시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성인은 하느님께 자신을 내어 맡기고 성모님의 전구를 구하면서 그 꿈을 키워갔습니다. 사제가 되어 청소년 사목을 할 때에도 성인에게는 언제나 자금이 충분치 않았지만 하느님이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일을 시작하면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자금이 마련되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인이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필요한 모든 것을 베푸셨습니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농부의 아들, 마치 겨자씨와 같았던 시골마을의 작은 소년은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내어 맡김으로서 고아들의 아버지 청소년 교육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이 성인의 축일에 전해지는 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더욱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길 때 더욱 풍성하게 열매 맺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등장하는 두 씨앗의 비유를 천천히 살펴보다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씨앗에게는 주도권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도권이 있다면 그것은 그냥 자신이 존재를 흙과 다른 주변 환경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 외에 다른 어떠한 권한도 없다는 것입니다. 내어 맡김은 씨앗의 형태가 없어지는 고통이 수반되지만, 그로 인해 다른 누군가에는 생명을 얻게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복음에서 표현된 깃들다라는 표현은 둥지를 틀다라는 표현으로도 표현되기도 합니다. 소멸을 통해 생명을 얻는 것... 그리스도인에게 이보다 의미 있는 삶은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텃밭에 뿌려져 자라고 있는 우리도 비록 보잘 것 없고 더디게 성장하면서 종종 성장 통을 겪곤 하지만, 이런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희망이 되고 그들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이 신비에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