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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1독서 : 요나 3,1-10 / 복음 : 루카 10,38-42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가 나온 부분을 성경을 읽으면서,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루카 10,42)’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루카 10,42)’라는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래 전에 이 본문을 대했을 때는 필요한 것 한가지는 뭐지?’, ‘좋은 몫은 무엇이지?’라는 제 마음 속에 의문으로 남았습니다. 렉시오 디비나 피정을 배우고, 돌아와서 필사를 하면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 39절을 보면 마리아의 몫이 나옵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루카 10,39)’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마르타의 활동은 의미 없는 것인가란 의문이 들었습니다. 마르타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대접하려고 집에 모셔들었는데, 식사 준비를 안해도 되는 것인가? 오늘 복음 말씀은 식사 준비와 같은 활동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전해줌으로 보아야 겠습니다. 하느님의 일보다 하느님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함에 대한 좋은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베트남 반 투안 추기경의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의 내용입니다. 그는 1975년 사이공의 부교구장 대주교로 임명되었으나 공산주의 정부에 체포되어 13년 동안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 수감되어 있는 동안 종잇조각에 쓴 글을 몰래 사람들에게 전하며 위로하곤 했는데, 이때 적은 짧은 글이 베트남 사회에 널리 퍼졌습니다. 1992년 베트남에서 추방되어, 로마에 머물다 1998년 교황청 정의평화위원장이 되었습니다. 20003, 아시아 주교로는 처음으로 교황과 교황청 고위 성지자의 사순절 피정 강론 요청을 받고 스물두 꼭지의 묵상을 준비한 것이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라는 제목의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선택해야 한다는 반투안 추기경의 글을 보겠습니다. 그는 창문도 없는 감방에서 격리된 채 9년을 보내는 동안, 며칠은 전깃불이 들어오고, 며칠은 어둠 속에 지내야 했습니다. 그럴 때면 더위와 습기로 인해 미치기 직전까지 이르렀고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았습니다.

당시 저는 8년의 사목 경험이 있는 젊은 주교였으며, 교구를 포기해야 하며 하느님을 위해 시작한 사업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상념으로 괴로워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밤 마음 깊은 곳에서 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왜 그토록 괴로워하느냐? 너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일(사업)을 구분해야 한다. 네가 마친 일과 계속해서 하기를 바라는 모든 것, 곧 사목 방문과 신학생, 수도자, 평신도, 젊은이 양성, 학생들을 위한 학교와 휴게실 건설, 믿지 않는 이들의 복음화 사명은 훌륭한 하느님의 일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아니다. 하느님께서 네가 이 모든 것을 포기하길 바라신다면 즉시 그렇게 하여라. 그리고 하느님을 믿어라! 하느님은 그 모든 것을 너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잘하실 것이다. 그분은 네 일을 너보다 훨씬 잘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맡기실 것이다. 너는 하느님을 선택했지 하느님의 일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 순간부터 새로운 힘이 제 마음을 채웠고 그 힘은 13년 동안 저를 지탱시켜 주었습니다. 하느님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적 삶의 뿌리가 되어야 합니다.(참조 : 반 투안,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 바오로딸, 2008)


매순간 삶에서 하느님과 하느님의 일에 대한 선택을 받고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하느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하면, 결국 결과는 좋지 않았던 경험이 많습니다. 복자 수도원에서는 형제들에게 활동과 관상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가치는 모든 수도자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는 말씀일 것입니다.


우리를 하느님과 하느님의 일에서 식별하게 해주는 것은 성경 말씀일 것입니다. 저는 바오로 사도가 주님께 기도했던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사도 22,10)’말씀으로는 주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1)’란 말씀으로는 일상의 걱정과 두려움에서 용기 있게 하느님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복음 말씀을 통해 활동과 관상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었습니다. 반 투안 추기경이 전해준 하느님의 일보다 하느님을 먼저 선택하라는 것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또한 마르타처럼 활동으로 분주하기 보다는, 먼저 마리아처럼 주님과 아주 가까운 거리인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데에 마음을 둘 수 있어야 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1코린 7,32)

무엇이든지 그가 이르는대로 하시오. (200주년 신약성서 요한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