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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9일 /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1독서: 즈카  2,5-9.14-15

 복음 : 루카  9,43-45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명인 수난과 죽음, 부활에 대해 두 번째로 예고하십니다. 어제 복음에서는 처음으로 수난 예고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과 군중들은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을까요?


루카는 그 의미가 그들에게 숨겨져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누가 그 의미를 숨길까요? 하느님께서 숨기실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을 보여주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악마는 사람들에게서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숨기고 있습니까? 악마는 항상 우리를 하느님과 분리시키기를 원하기 때문에 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는 또한 인간의 사고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사흘 후에 부활할 것이라고 말씀 하셨지만, 당시 사람들은 아직 부활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그들은 단지 받아 들일 수 없는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에 대한 생각에만 집중했습니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통해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계시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강력한 행동에 놀랐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전능하신 예수님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오늘 제 1독서에서는 하느님께서는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와 함께 하실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죽음을 겪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죽음의 의미는 우리를 떠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결과적으로, 군중들은 수난 예고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에게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버리고 떠나는 것입니까?


우리는 예수가 실제로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모든 인간의 삶, 심지어 수난과 죽음을 경험하셨습니다. 수난과 죽음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너무 커서 우리의 죄 때문에 고통 받고 죽으셨습니다.

 

수난과 죽음은 우리와 하느님의 연대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행복 할 때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행복하십니다. 우리가 특정한 것들로 고생 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고난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프거나 어려움을 겪어도 하느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고 믿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위로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지금 우리의 역할은 각 상황에서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현존과 하느님의 뜻을 인식하기 위해 잘 분별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세상의 삶은 고통과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고통과 죽음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우리를 그분의 영원한 삶과 행복에 함께 하도록 인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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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Clerical Congregation of the Blessed Korean Marty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