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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시작은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고 시작합니다. 바로 앞의 30절을 보면,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하나라고 당신의 신원을 말씀하신 것에 그들은 격분합니다.

 

토론의 상대자와 주제는 계속됩니다. 토론 상대자는 언제나 유다인이었고, 주제는 예수님의 신원입니다. 이번주 사순 5주간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유다인들에게 자기 신원을 여러 차례 밝히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나이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오늘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인지에 대한 논쟁으로 고조됩니다.

 

예수와 유다인들의 적대적 분위기는 고조되고,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폭력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믿음으로 초대하기 위하여 당신이 아버지 이름으로 행한 일들을 증거로 대십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신적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두가지 근거를 제시해 주십니다.

 

첫 번째, 예수님께서는 시편의 한 구절을 인용하십니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 이는 요한 복음서가 인용한 몇 안되는 구약성경 구절 중 하나입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의 말과 일들의 증언을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방식대로 성경 말씀에 근거해서 설명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자들이 신들로 칭해진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기 위해서 축성되어 파견된 자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 예수님은 당신이 행한 일들 즉, 계시 말씀과 표징들은 예수님의 신원과 정체를 증언하여 믿음으로 이끌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행한 일들이라도 믿도록 설득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그 일을 보게 되면 아버지께서 예수 안에, 예수께서 아버지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근본적으로 결여된 유다인들에게 예수님의 표징들은 아버지의 일로 보이지 않습니다. 불신하는 유다인들은 다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때가 되지 않았기에, 아버지의 보호를 받아 그들의 폭력을 피하게 됩니다.

 

이어서 불신하는 유다인들에 대비되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부각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처음 시작하던 곳에 머무르시자, 그 곳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확인했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과 그분의 말씀을 믿었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됩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 가까이에서 말씀과 그분의 표징을 보면서도 그분을 믿지 못합니다. 일상 안에서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지 않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신원을 마음에 간직할 수 있는 기도가 있습니다. 신학원에 지낼 때 한 노 수사님은 예수님의 신원을 기억하며 성당에서 늘 예수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기도를 기억하며, 예수님의 신원을 마음에 간직해야 겠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희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1코린 7,32)

무엇이든지 그가 이르는대로 하시오. (200주년 신약성서 요한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