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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수도원의 젊은이 피정인 복수젊피가 있습니다. 이 피정의 장점은 매번 피정 프로그램이 완전히 새롭다는 것입니다. 단점은 준비하는 사람은 매번 처음부터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워낙 눈높이 맞추는 것을 잘 못해서, 피정 프로그램을 만들다가 여러 기술적인 부분으로 영화, 드라마, 음악과 같이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그 때 고민하는 제게 한 형제가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라고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흥미를 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에서 단순하게 예수님 그분 자체가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 당신 자신에 대해서 말씀해주십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주민들과 유다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합니다.


먼저 예루살렘 주민들이 예수님에 대한 시각을 보겠습니다. 예수의 신원이 이미 알려져 있기 때문에 예수는 메시아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메시아관 때문에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요셉과 마리아에게서 나왔다는 사실만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외형만 알고 있고, 예수의 참된 신원을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들이 예수님의 신원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께는 당신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의 신원을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큰 소리로 말씀하신 것은 아주 중요하기에 귀담아 들어야 하는 의미입니다.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전달하고자 하신 것은 예수님은 하느님에게서 왔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아버지시고, 당신 자신과 하느님을 동등하게 보았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백성을 미혹하는 한낱 기적쟁이고, 자신들의 유다교 질서를 깨뜨리고, 로마인들로부터 위협을 받게 만드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자신들의 평화를 깨뜨리는 예수님을 잡아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지만, 그분의 때가 아니라서 잡지 못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의 신원이 한 가지 더 표현 됩니다. 그분의 때에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의 손에 넘겨지실 것이고, 우리를 위해 수난과 죽음의 길을 가실 것입니다. 유다인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스스로 가신 수난의 길입니다.


예수님의 신원은 하느님으로부터 오시고 하느님과 한분이시며, 우리를 위해 수난과 죽음의 길을 가신분이십니다. 그분의 신원을 머리로만이 아니라 마음 깊이 간직해야 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1코린 7,32)

무엇이든지 그가 이르는대로 하시오. (200주년 신약성서 요한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