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ol-of-Bethesda-2 (1).jpg




찬미 예수님. 어제는 왕실관리의 믿음 어린 간청으로 아들이 치유받습니다. 표징에 있어서 왕실관리의 믿음이었는데, 오늘은 어떤 표징을 보여주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오늘은 요한 복음의 세 번째 표징의 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다섯주랑이라 표현이 나옵니다. 이에 대해 아우구스티노는 모세 오경으로 보았습니다. 그 다섯 책은 아픈 사람들이 생겨나게 했습니다. 그 책들은 치유하지 못했습니다. 율법은 죄인들의 유죄를 입증할 뿐 용서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38년동안 병고의 시달리고 있던 병자가 예수님을 만납니다. 이 복음 내용과 마르코 복음의 중풍 병자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중풍 병자 이야기에서는 도와 주는 친구들의 믿음 덕분에 치유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한 복음의 병자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과 병자와의 만남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벳자다 못가에 서른여덟 해나 앓아 누워 있는 병자에게 물어보십니다. “건강해지고 싶으냐?” 병자는 예 건강해지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면 되는데,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이야기 합니다. 다른 기적이야기에서 기적이 일어날 때 보여지는 병자의 믿음이 선행되지 않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38년동안 병자는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누군가 먼저 그에게 따뜻한 말을 전해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병자는 그동안의 자신의 고난을 털어놓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조곤조곤 말씀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성으로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병자를 바로 치유해 주십니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예수님의 단 한마디 말씀으로 그 병자는 곧바로 치유됩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을 알고 계신 분이라는 것,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의 영과 육을 치유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유다인들처럼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면 안되겠습니다. 유다인들은 병자의 치유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병자가 안식일 규정을 어기고들 것을 들고 가는 것만 봅니다. 누가 치유해 주었냐고 묻지 않고, 그것을 들고 걸어가라고 한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십니다.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안식일 규정에만 머물러 있어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만나 ,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예수님께서는 병자를 만나, 마음과 육체의 병이 치유되었음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니 죄를 짓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당신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한마디 말씀으로도 우리는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유다인들처럼 우리 자신의 안식일 규정에 머무르지 말고,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믿음을 두어야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1코린 7,32)

무엇이든지 그가 이르는대로 하시오. (200주년 신약성서 요한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