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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오늘은 예수님과 율법학자는 논쟁하지 않고 서로 대담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제기된 물음의 내용은 모든 계명 가운데 어느 것이 첫째 가는 계명이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이중 계명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첫째 계명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라. 둘째 계명으로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계명을 주셨는데, 지켜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면 힘들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랑은 받은 만큼 줄 수 있습니다. 의무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려면 먼저 하느님의 사랑을 느껴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 14장에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구절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표현을 보았고, 복자회 창설자 방유룡 신부님께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어느 사람에게서도 비길 수 없는 사랑인데 이 사랑은 대월삼칙을 지킴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대월삼칙(對越三則)을 지키는 것은 재주 있는 사람, 힘센 사람, 웃어른의 사랑만 받는 이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미움을 받고 무식하고 재주 없는 이도 할 수 있다고 하느님은 말씀하셨다(영혼의 빛, 1959. 8. 22) 대월생활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대면하게 하는 자기 정화의 삶으로써 관상적 신비적 삶입니다. 이 삶은 세 가지 원칙과 두 가지 효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일칙은 내 자작으로 아무것도 아니한다. 이칙은 나는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것만 한다. 삼칙은 나는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바를 항상 해 드린다.’ 그 효과로써 첫 번째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는 항상 나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두 번째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아버지께서 친히 하신다.’


요한 1서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아들을 속죄제물로 보내심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주는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하느님의 사랑은 방유룡 신부님은 대월삼칙을 지킴으로 얻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이는 내 마음대로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것만 하고,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대월삼칙과 통하는 성경 말씀으로 겟세마니에서 예수님께서 드리신 기도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 나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삶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의 뜻에만 관심으로 두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시선이 겟세마니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신 예수님처럼 하느님께 두면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우리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신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시길 청해야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은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 말미에 율법 학자 한 사람에게 하느님의 나라가 멀지 않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을 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에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1코린 7,32)

무엇이든지 그가 이르는대로 하시오. (200주년 신약성서 요한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