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팀석

뿌연 미세먼지 속에서도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와 있는 3월 중순,
포이동성당성지순례단 85명은 3박4일(13~16일) 일정으로 제주도 성지순례길에 올랐다.

'제주산들평화순례피정'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제주 면형의 집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에 따라 4.3평화의 공원, 김기량펠릭스베드로 순례길, 추자도 황경한 묘, 김대건순례길(수월봉에서 김대건신부님 표착지인 용수성지, 올레12길), 정난주 마리아 묘, 올레7코스 (돔베낭골에서 외돌개), 새미은총의 동산, 황사평성지, 관덕정을 순례했다.

순례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 온 지금, 
아직도 순례길의 한 모퉁이들이 순례길을 멈추게 했던 돌부리처럼 나를 다시 순례길로 이끈다.
매일 새벽마다 수사신부님과 함께 받치는 성무일도 아침기도와 미사,
두차례의 나눔의 시간을 통해 주님 사랑을 체험하는 특별한 경험속에 아직도 알에서 닭으로 그리고 용이 되고자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되어 웃고 몸부림쳤던 어설픈 몸짓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맴돈다.

미세먼지 한 점 없는 맑은 공기속에 산과 들과 바다가 어울어진 아름다운 올레길을 손에 손을 잡고 환한 웃음으로 걸어 가던 얼굴들, 그리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순례자들의 긴 행렬,

''엄마''~~~~하면 떠오르는 정난주마리아와 황경한 모자의 애절한 사연,
''나는 치명하여 죽을 것이니 그대들도 마음 변치 말고 나를 따라오시오.''
라는 말을 남기고 순교한 제주의 사도 복자 김기량펠릭스베드로의 믿음과 삶의 여정,
모든 순례길 하나 하나가 소중하고 잊지 못할 은총의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내 가슴에는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짐으로 남아있다.

면형의 집 앞 뜰에는 수령이 250여년이나 되는 녹나무가 한그루 서있다. 오랜 세월 태풍으로 인한 비바람과 눈보라를 견디며 듬직하게 면형의 집을 지키고 있는 녹나무,
자세히 보니 오늘까지 저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게 한 것은 녹나무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나무 아래를 받쳐주는 버팀석이었다.

나무가 비바람에 쓰러지거나 이식을 할 때는 죽은 나무를 버팀목으로 세워 산나무를 살린다.
산나무가 죽은 나무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면 산나무는 다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 무성하게 자라지만 버팀목은 삭아 뭉그러져 그 사명을 다하고야 만다.

그런데 면형의집 녹나무는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단단한 바위가 버팀목을 대신하여 녹나무를 받쳐주고 있다.
마치 주님이 굳건한 반석위에 교회를 세웠듯이 녹나무의 반석이 되어 그 긴 세월을 지탱하고 있다.

모진 풍파 앞에도 부서지지 않는 버팀석,
우리에게도 이만한 버팀석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바라는 버팀석은 무엇일까?
남부럽지 않는 재물과 건강일까.

주님을 만나려면 이 땅에서 소외된 자, 고통받는 자, 좌절속에 우는 자,
굶주리는 자, 슬픔속에 아파하는 자들 곁으로 가라는 수사신부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주님은 어쩌면 저 버팀석처럼 우리의 고통과 우리의 잘못을 등에 짊어지고 저리 낮은 곳에서 엎드려 울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도 저 버팀석처럼 누군가의 버팀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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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에 함께 하신 배원일 주임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순례길을 열정과 사랑으로 인도하신 면형의 집, 이동철베드로, 김선우베네딕도 신부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또한 편안한 잠자리와 맛있고 정성이 가득한 음식을 제공하신 원장님, 막내수사님, 실장님, 주방 자매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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