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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철저히 지켰고, 그들은 예수님께 왜 제자들은 단식하지 않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단식은 당신과 관련 있음을 설명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즐거운 혼인잔치와 같으므로 단식할 수 없고, 예수님께서 떠나시면 제자들은 단식할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예수님의 죽음 이후, 사형 선고 받으신 수요일과 돌아가신 금요일에 단식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단식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고 동참하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단식으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피정 주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워낙 삼시 세끼를 꼭 먹어야 해서, 단식은 저에게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중요한 피정에서 저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보다는 오직 저 자신의 배고픔만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피정 지도자는 제게 예수님에 대한 마음 없이, 분심에 빠져 있는 모습을 지적해주셨습니다.


바리사이들처럼 단식 그 자체를 지키려는 것보다, 단식을 통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란 지향으로 가야겠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오늘 독서 이사야 예언서를 통해 단식을 구체화 하십니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이사 58,7)

 

단식을 통해 우리는 마음 안에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새기고, 우리는 고통 중에 있는 이웃을 도와야 겠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어려운 이웃에 대한 통계를 보겠습니다. 2018UN의 보고서를 보면 식량 부족 상태에 놓인 인구는 8억여명이고, 전세계 인구가 76억명인 점을 고려할 때 9명중 1명은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단식을 통해 절약한 재화를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 어떨까 고민해 봅니다. 어려운 이웃에 대한 마음은 쉽게 잘 생기지 않고, 주님에 수난과 죽음에 대한 묵상은 잘 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는 단식을 통해서, 몸으로 기억하고, 마음으로도 기억하도록 권고합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우리 자신을 먼저 바라보는 성향이 있기에, 주님께 기도해야겠습니다.

사순시기 육시경 찬미가는 주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이끌어 줍니다.

 

배고픈 굶주림도 나눠주시고

우리를 당신으로 채워주시어

죄악은 한결같이 미워하면서

덕행을 행하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1코린 7,32)

무엇이든지 그가 이르는대로 하시오. (200주년 신약성서 요한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