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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군중들과 헤로데의 반응으로 시작합니다. 군중들과 헤로데는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났다고 하고, 엘리야라고 하고, 예언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의 죽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은 세례자 요한을 죽음에 이르게 한 직언을 중심으로 보고자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앞서 예수님의 사명을 먼저 사람들에게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의 사명을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전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공생활 하시기 전에,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선포하고, 세례를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는 헤로데 왕에게 직언을 합니다.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여러 차례 말합니다. 이로써 그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말했던 것입니다. 헤로데의 생일에,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어 손님들을 즐겁게 해줍니다. 이에 헤로데 왕은 딸에게 왕국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맹세를 합니다. 헤로디아의 딸은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했고, 그는 그렇게 쉽게 죽게 됩니다.


마지막 예언자는 예수님의 공생활과 죽음을 미리 예고해 줍니다. 예수님은 유다교 안에서,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사람들에게 직언을 하셨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고,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마라’, 그리고 예수님은 마음은 없고, 형식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을 질타하셨습니다. 유다교 사회 안에서의 예수님의 직언은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고, 유다교의 질서를 깨뜨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사회의 주류층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 못했고, 사형 선고를 내립니다. 결국, 세례자 요한처럼 예수님도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쉽게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의 직언은 그 자신에게는 큰 어려움을 주었고,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도 유다교 사회 안에서의 직언은 결국 십자가 죽음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의롭지 않은 일을 보고 피하는 것은 쉬운 길이고, 직면해서 직언하는 것은 어려운 길입니다. 입회 전에 한 수녀님이 제게 편지에 수도자는 모래길이 아닌 자갈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새긴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직언해야 할 때 모래길이 아니라 직언하는 자갈길을 가는 용기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1코린 7,32)

무엇이든지 그가 이르는대로 하시오. (200주년 신약성서 요한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