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0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루카 4, 14-22)

 

찬미 예수님!

 

어느 부부가 심하게 부부싸움을 하고서는 남편이 집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 다시 들어왔습니다.

아니, 왜 다시 들어와요? 뭐 놓고 온 거라도 있나요?” 아내는 비아냥 거리며 얘기했습니다.

 

아주 중요한 걸 하나 놓고 왔소. 그거만 가지고 가겠소.”

그래요, 그게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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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당신.”

 

아내는 찡그렸던 얼굴이 확 펴지면서 마음 가득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이사야 예언서를 통해서 다시 확인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그렇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이라는 뜻의 메시아. 즉 사제나 예언자로 성별되는 하나의 의식이었던 기름 부음은 지금도 사제품에서 중요한 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자신이 바로 그 메시아, 고대하던 그 구원자임을 밝히십니다. 당신의 사명은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가난함은 물질적인 가난함뿐만 영적인 가난함까지 포함합니다. 즉 인간이란 존재가 숙명적으로 가지게 되는 불안과 불합리한 삶에 대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숙명적으로 가난한 존재인 것입니다. 거기에서 해방시키는 기쁜 소식이 바로 주님의 도래.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하느님 나라인 것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눈 먼 이들이 다시 보게되고, 억압받는 이들이 그 구속에서 풀리는 은혜로운 상태로 전환됩니다.

 

오늘 독서인 요한 1서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너무나 명확하게 얘기해 줍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랑의 이중 계명,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별개의 계명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당연히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랑이 내 의지로 다짐으로 결심으로 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마음,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은 오직 그분의 도우심과 은총으로 말미암아 시작되고 완성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하는 것입니다.

 

내가 당신이 명령한 사랑의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아니 그 사랑 안에서 해방되고 행복할 수 있도록 청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러한 기도를 가장 좋아하시고 꼭 들어주십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청원을 듣고 그분이 얼마나 좋아하실지...마치 아이가 엄마, 나 친구들을 사랑하고 잘해주고 싶어. 도와줘.’하는 말처럼 어여삐 여기실 것입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