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02 대림 1주일(루카 21,25-28.34-36)

 

찬미 예수님!

 

처칠은 90세까지 장수했는데, 말년에 한 젊은 기자가 처칠을 인터뷰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년에도 건강하게 다시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처칠이 여유 있게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여보게, 내년에도 못 만날 이유가 뭐가 있는가. 내가 보건데, 자네는 아주 건강해 보이는데 내년까지는 충분히 살 것 같아....... 걱정 말게나.”

 

새해 복 많이 지으시고 받으십시오.

오늘부터 대림시기가 시작됩니다. 교회력으로는 새해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대림은 라틴어 ADVENTUS에서 온 말로 도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그렇게 고대했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리는 의미이지요. 4주 후에 있을 성탄을 준비하는 기쁨과 또 하나의 기다림인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고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경건함과 참회의 의미를 담아서 대영광송을 생략합니다. 대림은 바로 주님 성탄의 기쁨과 주님 재림의 준비, 기다림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말의 대림(待臨)은 이 기다린다는 의미가 정확히 드러나 있지요,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임하시기를 기다리는 시기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이 기다림의 영성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수 천 년 동안 그리스도를 고대하였듯이, 우리는 그분을 이미 맞아들였고, 또 그분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이 시기는 그러한 기쁨과 기다림이 중첩된 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영광송을 하지 않는 참회와 기다림의 의미와 알렐루야를 하는 기쁨과 희망의 의미가 대림절의 전례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제가 필리핀에 있을 때 필리핀에는 대림절이 없나? 하고 의아해 하였습니다. 9월이 되면 벌써 성탄 트리를 판매하고 10월이면 각 가정에 성탄 장식과 캐롤이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기쁨에 겨워 즐거워하고 축제를 즐깁니다. 그 나라는 기쁨과 희망이 아주 팽배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림이 거의 사순처럼 여겨지지요. 기쁨보다는 조신하고 준비하는 시기라고 인식됩니다. 하지만 사실 대림은 이 두 가지 성격이 즉 기쁨과 회개, 희망과 기다림이 겹쳐진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례에서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이 잘 드러납니다.

 

첫 번째 특징은 특별히 봉독되는 구약의 독서, 특히 이사야서와 예레미아서 등 메시아를 예고한 많은 예언들을 통해 하느님을 많이 계시한다는 것입니다. 계시는 점진적으로 밝혀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계시와 더불어 구세주에 대한 갈망을 키워나가야 하기에 그렇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이 그렇게 고대하던 그 구세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우리는 이 시기에 분명히 인식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구세주께서 역사 안에 오심을 미리 알려 준 세례자 요한을 통하여 우리에게 대림 시기가 회개의 시기임을 일깨워 준다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을 통하여 우리를 참된 회개에로 초대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에 앞서 회개를 외친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 신약의 첫째 예언자였습니다. 그의 일성 회개하여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말과 그에게 직접 세례를 받은 이는 죄의 용서를 받는다는 가르침은 당시에는 혁명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율법을 넘어서서 그 공고한 정결례, 속죄 예식을 다 넘어서서 바로 세례를 통하여 죄의 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민중과 백성과 그리고 무엇보다 하느님과 가까이 있었음을 드러냅니다. 613가지의 성문법과 그 외의 수많은 자잘한 지침들을 지킬 수 없는 민중들의 삶을 그는 직시했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곧바로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더 이상 죄의식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였고, 정말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 안에서 기뻐하라. 너의 죄사함을 기뻐하라. 그리고 당당하고 기쁘게 살아라. 라는 그의 세례는 들불처럼 이스라엘을 휩쓸었습니다. 그의 준엄한 일갈은 정의가 바로 하느님에게서 옴을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 않고 헤로데의 비행을 비판하는 그 진리의 일갈이 바로 하느님의 가치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시기에 우리는 세례자 요한을 통해서 사랑과 정의, 자비와 공정을 묵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사랑 없는 정의는 무자비하고, 정의 없는 사랑은 공허하다는 것을 한 번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하겠습니다. 먼저 교회 안에 그리고 수도회 안에 이러한 불의한 일은 없는지, 불공정한 사례는 없는지 내 일상에 나와 관계 맺는 이들과의 사이에 이러한 사례는 없는지 성찰해보고 반성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례자 요한이 우리에게 지금까지 주는 메시지가 아닌가 합니다. 현실의 문제 파악과 신학적 성찰 그리고 그에 따른 대안의 삶이 바로 우리가 늘 나선형으로 살아가야하는 삶의 구조라고 신학적 방법론에서는 말합니다. 이러한 현실 성찰 대안의 방식은 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마지막으로 이 시기에 우리는 한 여인을 묵상하게 됩니다. 그분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으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하느님께서 거하시기에 가장 완벽한 분이시며 당신 몸으로 그분을 갖고 보호하신 성모님보다 우리에게 완벽한 롤모델은 없을 것입니다. 성모님의 삶을, 그분의 지향을, 그분의 아픔을, 그분의 기다림을 바라보고 따라가다 보면 바로 이 대림의 기쁨과 회개, 희망과 기다림을 더욱 깊숙이 바라보고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 예레미야는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에게 한 약속을 이루어 주겠다.

그날과 그때에 내가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아나게 하리니,

그가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룰 것이다.”

라고 노래합니다.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이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과 다른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도,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처럼 주님께서 더욱 자라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며,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하면서 우리를 격려합니다.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제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정확히 가르쳐주는 말씀이지요. 그리고 사랑을 충만하게 하고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는 것이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베푸는 은총입니다.

 

대림의 진정한 의미는 이렇게 공정과 정의, 사랑과 자비의 되새김이며 우리 마음에 거하시고 은총을 부어주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렇게 살아가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묵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이미 오셨고 다시 오실 그리스도가 베푸시는 은총임을 다시 한 번 받아들이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꼭 깨어 기도하도록 협조하고 또 협조해야 하겠습니다.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