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20 성 김대건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루카(9,23-26)

 

찬미 예수님!

 

오늘은 성 김대건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9월은 순교 성월이기도 합니다. 순교자의 후예로서 또 순교자들의 복음 정신을 현양하고 따르기 위해서 창설된 우리 복자회는 특별히 이 성월과 오늘의 대축일을 기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선조들이 조선 시대의 폐단을 극복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목숨까지 버렸다는 것은 오늘 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한 민족이 북한과 남한으로 외세의 뜻에 의해서 분단되고 벌써 65년이 흘렀습니다. 올해 남북 정상의 만남과 또 북미 회담의 개최는 정말 감격스러운 평화의 물꼬를 텄습니다. 또 어제부터 열리는 남북 정상의 세 번째 만남은 좀 더 진전된 방향으로의 대세를 다시 살리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순교자 대축일을 맞아서 무엇이 그 시대, 우리 선조들의 목숨을 바치게 하였는지,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어떤 일에 매진하고 헌신해야 하는지 한번 성찰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정하상 바오로 성인이 상재상서 중에서 쓴 글을 좀 읽어 드리겠습니다.

 

이제 감히 그 도리가 그릇되지 아니함을 간단하게 말하겠습니다.

천지 위에는 주재하시는 분이 계시는 데 거기에는 세 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는 만물이요, 둘은 양심이요, 셋은 성경입니다.

만물은 무엇을 말함이겠습니까? 집을 가지고 비유하건대 그 집에는 기둥과 지추돌이 있고 대들보와 서까래가 있고 문과 창이 있고 담과 벽이 있고 칸막이와 시렁이 척도가 틀리지 않고 모나고 둥그스러움이 다 각각 제도에 따라 된 것인데 만일 기둥과 지추돌과 서까래와 문과 창과 담과 벽이 서로 홀연히 합해지고 저절로 섰다고 말하면 반드시 미친 사람의 말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제 생각 하건 데 천지는 커다란 집입니다. 나는 것, 뛰는 것, 움직이는 것, 심어 자라는 것, 기기묘묘한 형상들이 어찌 저절로 생겨났겠습니까? 만일 저절로 이루어 졌다면 해와 달과 별들이 어떻게 그 위치를 지켜 그르침이 없으며 봄여름 가을 겨울이 그 순서를 그르치지 않습니까? 흥하고 망하고 번영하고 시들음을 지배하는 이가 누구이며 착한 자에게 복을 음난 한 자에게 화를 주장하는 자 누구이겠습니까? 높이 솟은 하늘이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데 모든 세상 사람이 죽어 무덤으로 가는 것을 자연으로 돌림은 이는 마치 유복자가 그 아비를 보지 못했다 하여 그 아비라 있음을 믿지 아니함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한 편의 묘한 문장이나 한 폭의 명화를 보면 흠모하고 찬탄하여 반드시 누구의 재주로 된 것인가를 물어 결코 평범히 무시하여 그저 보아 넘기지 않습니다.

우주의 만물이 가지각색으로 빽빽하게 들어 차 한없이 많은 것도 역시 일종의 명작이요 명화인데 예로부터 이제까지 거의 없다시피 드물게 이것만은 그 작자를 묻지 아니하는 것이 웬 일이오니까? 이 세상 사물이 질()과 모()와 작()과 위()의 넉자를 벗어나지 못하옵니다. 질은 재료요 모는 상태요 작은 작자요 위는 이용함입니다.

가까이는 우리 몸에서나 멀리는 모든 물건에서 그렇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위대한 천지가 어찌 그 작자가 없겠습니까? 만물을 보고 그 주재가 계심을 아는 것입니다.

 

..... 중략

 

가정에 해를 끼쳤습니까? 나라에 해를 끼쳤습니까? 그 하는 일을 보고 그 행실을 살피면 그 인간이 어떠함을 알 수 있고 그 가르침이 어떠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저희들이 일찍이 역적질을 하였습니까? 도둑질을 하였습니까? 일직이 간음을 하였습니까? 살인을 하였습니까?

또 법에도 없는 형벌을 해서 천주를 배반케 하고 더러운 폭설로 모독하는 사실이 허다합니다. 대저 천주는 만물을 만드신 큰 부모시오 만물을 다스리시는 큰 주재십니다. 옛 성현들은 일이 생겼을 때 우러러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의 사람들은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해마다 계속 흉년을 당하고 있습니까? 백성과 나라가 곤궁에 빠진 이때 바라건대 우리의 어지신 임금께서는 밤에도 옷을 벗지 마시고 해 뜰 무렵 진지를 잡수실 만큼 부지런히 정사를 돌보시사 어지심을 베푸시고 살리기를 좋아하시는 덕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시옵소서 아! 저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만이 홀로 우리 임금님의 백성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이 인간들이 어찌하여 극도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아낌이 없는고 ?

옥안 에서는 지쳐서 죽고 문밖에서는 목이 잘려 죽음이 연달아 끊이지 아니하여 피눈물이 도랑을 이루고 통곡하는 소리 하늘을 찌르고 아비는 자식을 부르고 형이 아우를 부르고 궁지에 몰려 몸을 돌이킬 데가 없는 것 같이 되었으니 이게 무슨 꼴입니까? 대저 목숨을 덜고 생명을 바쳐서 천주의 참된 교의 증거가 되고 천주의 영광을 들어냄은 우리들의 분수에 있는 일입니다. 이 몸도 장차 죽을 목숨입니다. 이렇게 감히 말할 때를 만나 한번 머리를 들고 길게 외치지 못하고 슬프게 입을 다물고 죽는다면 산처럼 쌓인 이 하회를 장차 백대의 후세에 폭로할 수 없겠습니다.

 

엎드려 빌건대 바로 이때에 밝히 비추어 굽어 보시와 도리가 참된지, 거짓인지, 그릇 된지, 올바른지 자세히 판단한 다음 위로는 나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일변하여 도의로 돌아와 금령을 늦추어 체포하는 법을 거두고 옥에 갇힌 사람들을 내놓고 나라의 백성들이 모두 제 자리에 돌아가 제 업을 즐기면 한가지로 평화를 누리게 하시기를 천만번 바라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은 정말 그러하였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물론이고 이 상재상서를 쓴 정하상 바오로 성인은 어떠합니까? 아버지와 큰형,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와 정철상 가롤로는 1801년에 순교합니다. 그리고 정하상 성인과 어머나 유소사 체칠리아, 정정혜 엘리사벳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됩니다. 달레의 천주교회사에서는 이를 이렇게 보도합니다.

 

여러 사람이 아직도 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정씨 일가는 천주교란 말만 들어도 벌벌 떨며, 그런 교를 계속 믿으려 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친척들은 정하상과 그 집안 식구들이 천주교를 버리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통렬한 비난, 협박, 멸시, 조소, 심지어 학대까지도 모두 동원되었다.”

 

이런 와중에서도 정하상 성인은 천주교에 대한 배움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 교회의 가장 중요한 일꾼이 됩니다. 사제 청원과 조선독립 교구 설치에 대한 탄원 등은 정하상 성인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참으로 눈물겨운 우리 역사입니다.

 

그리고 1839년에 어머니 유소사, 동생 정정혜와 함께 순교의 월계관을 씁니다.

 

우리 교회 내에서는 참으로 복된 집안입니다. 전 가족 5명이 모두 성인과 복자품에 오른 참으로 대단한 집안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눈으로 본다면 이 가정은 풍지박살, 패가망신한 집안일 것입니다. 전 가족 구성원이 나라가 금하는 종교를 믿다가 다 죽은 그런 집안으로 불려 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이 가정의 모든 분들이 얼마나 존경받습니까?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 바로 정약종 복자이고, 또 많은 이들이 정하상과 유소사, 정정혜 성인과 정철상 복자를 흠모하지 않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분들이 바로 목숨을 잃었지만 결국 목숨을 구한 본보기가 아니겠습니까?

순교 성월이 이제 열흘 정도 남았고, 추석 명절이 다음 주로 다가옵니다. 바람도 선선하고 날씨도 청명한 것이 나들이하기에 참 좋은 계절입니다. 가까운 성지라도 방문하시면서 순교자들의 그 마음과 통교하는 시간을 한 번씩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또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평화 그리고 화해와 협력을 통한 궁극적 통일을 위해서도 우리 선조 순교자들에게 전구를 부탁드려주시길 바랍니다.

남과 북의 정상이 서로 웃으면서 악수하고 포옹하는 장면이 참 보기 좋습니다. 또 휴전선에서 서로를 적대하는 행위를 하지 않고, 점차적으로 군축을 하겠다는 군사 합의문 선언도 참 의미가 깊습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새로운 바람이며 성령의 움직임이라고 읽혀집니다.

 

평화와 화해에 아직도 찬물을 끼얹는 어둠의 세력을 단호히 배격합니다. 긴장과 갈등을 조장하는 그 어떤 선동도 주님께서 바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라고 우리가 이뤄내야 하는 것은 바로 평화와 화해 그리고 친교의 나라인 하느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