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30 연중 제 12주간 토요일(마태 8, 5-17)

 

찬미 예수님!

 

그저 만만한 건 신()이었다. 온종일 신을 죽였다.

죽이고 또 죽이고 일백번 고쳐죽여도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신,

증오의 마지막 극치인 살의(殺意), 내 살의를 위해서도 당신은 있어야 돼.

 

통곡이 치받쳤다. 며칠 동안 주리 참듯 참던 울음이었다.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참으려니 온몸이 격렬하게 요동을 쳤다. 구원의 가망이 없는 극형이었다. 끔찍한 일이었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누구라도 이런 끔찍한 극형에 당해서는 그 영문을 물을 권리가 있다. 신의 권위가 장난질칠 권리가 아닌 바에야 의당 그 극형이 무슨 잘못에서 연유했는지 밝혀줘야 한다. , 당신의 존재의 가장 참을 수 없음은 그 대답 없음이다. 한 번도 목소리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도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을 있는 것처럼 느끼고, 부르고, 매달리게 하는 그 이상하고 음흉한 힘이다.

영원히 순화될 것 같지 않은 원색적인 포악이 거침없이 치밀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신의 문제는 나는 무엇일까 하는 나의 내면응시로 귀착되고 만다.

 

일 년 전, 내가 그렇게 고통하고 신음할 때, 수없이 되물었던 질문,

하느님, 한 말씀만 하시옵소서. 그러나 하느님은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없으시다.

그러나 그 고통의 순간을 지나올 때, 내가 그렇게도 원망할 하느님이 계셨다는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나의 원망을 받아줄 하느님이 안 계셨다면, 오늘의 나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고통의 순간에 수많은 원망 섞인 질문을 던질 때, 그 많은 원망을 고스란히 들어주셨던 하느님

그분의 침묵은 더 많은 원망을 듣고자 하셨던 하느님의 배려였던 것이다.

 

이글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의 마취과 수련의였던 외아들이 26살에 과로로 인한 교통사고로 요절하고 박완서 작가가 가톨릭 잡지 <생활성서>1년간 연재한 글을 모은 책 <한 말씀만 하소서> 중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라고 말씀하신 백부장의 믿음을 봅니다.

 

이 백부장은 로마군 백부장이 아니라 헤로데가 로마군 편제를 본뜬 부대의 이방인 백부장으로 여겨집니다. 이 백부장은 자기 종의 중풍병을 고치기 위해서 주님께 직접 청합니다. 주님이 그 집으로 가려고 하자, 이방인 백부장은 주님을 모실 자격이 없다면서, 사실 유다인들은 이방인의 집에 방문하는 것조차도 금지하던 시대였습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상관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군조직을 들어서 주님의 주인됨을, 그 권위와 능력을 고백합니다.

 

한 말씀만 하소서.” 그러면 제 종의 몸에 들어온 병마가 사라질 것입니다. 당신을 그러한 권능이 있으신 예언자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지금 이방인 백부장이 고백하는 것입니다.

 

앞서 발췌한 박완서의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책은 반대로 하느님의 침묵에 대해서, 자신의 금쪽같은 의사 외아들을 잃고서 비탄과 절망에 빠진 어머니의 절규의 일기입니다. 이 책에서 하느님의 부재, 하느님의 침묵에 대해서 반발하고 저항하고 심지어는 저주를 퍼붓는 작가의 날것 그대로의 통곡을 만납니다.

 

우리의 삶에서 주님은 어떤 말씀을 해 주십니까? 사실 이 어머니의 절규 같은 물음이 우리 안에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되물어 봅니다.

 

내 모든 방식을 동원하여 온 몸과 마음과 정신과 목숨으로 주님의 현존을 부분적으로라도 알아채고, 그 현존 안에서 희미한 믿음이지만 분명히 계신다.’ 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을 바랍니다. 이방인 백부장처럼 흔들림 없는 최고의 믿음에는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우리가 매일 성체를 영하기 전에 고백하는 기도도 바로 이 백부장의 고백에서 온 것입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