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iration-378418_960_720.jpg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은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공경하며 그 마음을 본받고자 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오늘 복음말씀에서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옴으로 인해서 우리 교회가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감사송을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한 사랑으로 십자가에 높이 달리시어 저희를 위하여 몸소 자신을 제물로 바치시고 심장이 찔리시어 피와 물을 쏟으시니 거기서 교회의 성사들이 흘러나오고 모든 이가 구세주의 열린 성심께 달려가 끊임없이 구원의 샘물을 길어 올리나이다.”라고 노래합니다. 이 얼마나 신비로운 일입니까! 창조주의 아드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오시고, 당신 아드님께서 죽기까지 순명하시어 몸소 제물이 되시고, 그 심장에서 피와 물이 쏟아지며 거기로부터 교회의 성사들이 흘러나오고, 교회의 구성원들은 구세주의 성심께 달려가 끊임없이 구원의 샘물을 길어 올린다는 주님의 계획이 얼마나 경이롭습니까!

이 신비로운 하느님의 계획은 신앙의 눈을 크게 부릅뜨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이더라도 마음으로 깊이 새기지 않으면 금방 사라져 버리고 만다고 합니다. 오늘 제1독서, 호세아서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신비롭고도 애절한 사랑의 구원계획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그를 사랑하여 나의 그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내가 에프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내 팔로 안아 주었지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병을 고쳐 준 줄을 알지 못하였다.”

   제1독서의 표현 중에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겼으며라는 것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정의 끈과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겼으나 그들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눈을 감고 있어서 그 움직임을 알아채지 못했던 듯 합니다. 심지어 하느님은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고 말하십니다. 이렇게 애절하게 사랑해주었음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끈을 인식하지못합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보면, “과거의 모든 시대에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던 그 신비의 계획이 어떠한 것인지 모든 사람에게 밝혀 주게 하셨습니다.”하고 말씀하십니다. 과거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주 나타나서 애정표현을 하셨으나,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직접 보내셔서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신앙의 눈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하느님의 자비하신 계획으로부터 나온 그리스도의 사랑은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이치적으로 당연합니다.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께서는 인간이 아닙니다.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의 영원한 계획을 우리가 단번에, 혹은 짧은 시간내에 알아듣기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원이라는 단어와 너무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분께서 당신의 모상을 우리 안에 심어주셨다면, 분명히 기필코 그분의 도우심으로 그 영원성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1독서와 2독서 모두 하느님의 신비로운 움직임으로 인간세계로 들어오셔서 활동하시는 부분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즉 이 지상세계는 우리 눈에 보이고 감지할 수 있는 세계와 신비세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사부님이신 방유룡신부님도 신비세계 존재를 강조하셨습니다.

  “ 신비 세계의 존재 (神秘世界存在) -신비 세계의 존재는 확실하다. 그러나 장님은 좋고 아름다운 자연 세계가 있어도 못 보는 것과 같이 침묵의 눈을 갖지 않으면 이 신비의 세계를 못 본다. 사욕을 누르지 못하면 이 신비세계를 깨닫지 못한다. 이 신비세계 존재를 깨달으려면 침묵십계를 실천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이 신비 세계를 하느님을 위하여 만드신 것도 아니요 , 어떤 동물을 위하여 만드신 것도 아니요, 틀림없이 우리 사람 -나를 위하여 만드신 것이다. (1959. 8. 26)

 

  침묵의 눈을 지니면 신비의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침묵십계를 잘 실천하여 신비세계를 보게 되면, 이제부터는 신비세상에서 즐거이 뛰어놀면 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침묵십계의 실천으로 신비세계가 보이면, 그리스도의 사랑의 샘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은총을 언제나 가득히 받으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화답송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우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면서, 그 물을 마시고 성령안에서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만 하면 됩니다.

   신비세계에서 살게 되면, 하느님을 침묵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시는 분이 제 뒤에 떡하니 버티고 계시고, 제가 아프거나 부족한 것이 있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부자이신 분께 달라고 청하면 될 것 같습니다. 헌데 충만하신 그분과 함께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무엇이 필요한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주려고 바빠질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은 수고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비하시고 신비로운 계획을 당신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서 명명백백 드러내셨습니다. 그 신비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창설신부님 말씀처럼 침묵십계를 잘 실천하는 것입니다. 저는 특히 생각 의지의 침묵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하면 예수님의 거룩하신 성심께로 달려가서 끊이지않고 흐르는 생명의 물을 마실 수 있을 것입니다. 헌데 우리가 침묵십계를 게을리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화를 내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제1독서에서 보면,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성심을 통하여 저희에게 베푸신 놀라운 사랑을 기리며 기뻐하오니 이 사랑의 샘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은총을 언제나 가득히 받게 하소서. 아멘.

profile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Clerical Congregation of the Blessed Korean Marty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