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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복음에서 유다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38년동안 병을 앓아온 이를 치유해주었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도 유다인들은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사람들과의 갈등을 빚어내시는 것일까요? 그들에게 비위를 맞추면서도 충분히 좋은 일을 하실 수 있을텐데 말이지요. 저라면 충분히 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좋은 일을 하였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이 철저하게 지키는 그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아버지의 뜻을 따르며 당신의 일을 수행하십니다.
 

 오늘 복음 마지막에 보면,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예수님 자신의 뜻을 수행해야 했다면 예수님도 사람들과의 갈등을 빚어내는 일들을 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추구하셨기 때문에 그 가치를 양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추구하셨다면, 우리도 당연히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아버지의 뜻을 추구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어떤 것이 아버지의 뜻을 추구하는데 가장 밑바탕이 될까?’ 아버지의 뜻을 추구하기 위한 기본자세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추구하려면 아버지의 뜻을 들어야 하고, 아버지의 뜻을 들으려면 내 마음이 고요해야 하고, 마음이 고요해지려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잠잠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마음의 소리란 결국 분심잡념들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마음의 소리, 분심잡념들을 어떻게 잠잠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저는 분심잡념을 잠잠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분심잡념이 들어왔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이 떠나가도록 자연스럽게 놔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무일도 기도를 할 때나 개인묵상을 할 때나, 참으로 다양한 분심들이 제 머리 속을 스쳐지나갑니다. 기도를 시작할 때는 별로 분심이 안드는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제가 분심에 이끌려서,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고 삼천포로 빠지곤 합니다. 그러면 아차하고 다시 기도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다시 기도로 돌아오면 또 다른 분심이 오거나 혹은 같은 분심이 다시 되돌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인지하고 다시 또 흘려보내면 됩니다.
 

 기도시간이 아닌 경우에도 분심잡념들이 우리 머릿속을 괴롭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역시 우리가 허락한 생각들이 아니라면 그 분심들을 과감히 물리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심잡념을 물리치는 것이 반복되면서 우리는 주님께로 돌아가고 돌아가는 연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분심들을 물리치다보면, 영적인 민감성이 길러집니다. 이 분심은 그냥 물리쳐야겠다, 혹은 이 분심은 좀 다루어주어야겠다는 등의 분별력이 생깁니다.
 

 기도시간이나 미사시간 그리고 평소에도 수많은 분심들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분심들이 찾아오는데, 우리가 이것을 하나씩 하나씩 대처하는 것이 우리의 영적 민감성을 키우는 훈련이 됩니다. 분심잡념을 물리치면 우리 마음이 고요해지고, 그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기 쉬운 토대가 마련이 됩니다.
 

 매순간 찾아오는 분심들을 잘 인지하고 잘 다루어주거나 흘려보냄으로써 마음의 고요를 이루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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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Clerical Congregation of the Blessed Korean Marty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