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학부 시절 신학원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정확하게 어떤 일 때문에 그랬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떤 선배 수사님과 의견 충돌로 인해 서로 얼굴을 붉힌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어떤 문제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었겠지요. 아무튼 그렇게 서로의 기분이 상한 채로 저는 끝기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끝기도 시간에 수도회 고유의 기도로 창설신부님께서 지으신 평화가를 바치지요? 성무일도를 바치고 평화가를 바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평화가 가사 가운데 몇 단어들이 저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것은 일치, 자유, 평화라는 단어였습니다.

선배 수사님과 저는 의견 일치로 인해 하나가 되어야 할 수도공동체 생활 안에서 하나가 아닌 각자 분리된 채로 기도에 임했습니다. 당연히 마음은 분심으로 가득했지요. 마음에 분심이 가득한 저의 모습은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를 상실한 모습이었습니다. 선배 수사님과의 다툼은 온 힘과 온 마음, 온 정신을 다해서 기도를 바쳐야 하는 그 시간에 제 안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가득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느님께 저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지 못하고 분심에 사로잡혀 자유롭지 못한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자유롭지 못한 마음은 당연히 평화로울 리가 없지요. 평화가 아니라 불신과 서운함, 미움으로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한 깨달음을 얻은 저는 끝기도 후에 그 선배 수사님께 그 마음을 담아 짧은 사과 글을 썼습니다. 이후로 저는 평화를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한 도식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일치하지 못하면 자유롭지 못하고 그런 과정에서는 평화도 없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벙어리 마귀를 쫓아 주신 예수님이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그러한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루카 11,17)라고 말씀하십니다. 공동체 내의 분열은 언제나 어떤 공동체를 막론하고 그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게 만듭니다. 복음 말씀 그대로 예수님이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일을 한 것이라면 이미 그들은 분열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 우두머리인 베엘제불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시기와 질투 역시도 악에서 오는 것들입니다. 사람들 앞에 드러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잔치 집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는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에 대해 연구하고 하느님의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분의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은, 입술에서 진실이 사라지고 끊긴 사람들입니다.(예레 7,28)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힘으로 일을 하셨지만 당신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드러나시기를 바라셨습니다. 마귀를 쫓아내신 것은 예수님이시지만 그 일을 통해 다가온 것은 예수님의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낼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과 하느님께서 하나로 일치되어 계셨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 그 사람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었고 종국에는 평화를 되찾아 주신 것입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그 누구든지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를 발전시키고 유지시킬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공동체의 일치입니다. 특히 수도생활을 하는 우리들은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분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각각의 지체로서 각자의 소임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각자의 소임을 통해 나는 얼마나 공동체에 일치하고 있는가를 살피며 보내실 수 있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만일 일치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한다면, 그 일치를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시는 하루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