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근본도 없는 천한 목수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식사 전에 손도 씻지 않았고, 죄인과 창녀들과 어울렸으며,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도 않았고, 먹보이고 술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원수마저도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율법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리고 가르치는데 말입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지하고 바꾸려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율법의 근본정신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율법의 근본정신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는 율법의 완성이기도 합니다. 사랑이신 예수님은 사랑을 위해 사랑에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때문에 율법은 세상이 끝날 때까지, 예수님께서 정하신 때가 도래하기 전까지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바로 율법의 근본정신을 실천하도록 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우리를 죄짓게 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우리를 보다 자유롭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고수하고 율법 준수만을 강요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덕분에 예수님 시대의 율법은 더 이상 자유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옭아매는 도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또한 그들은 율법의 근본적인 정신과 존재 이유를 간과한 채 그 율법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단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은 율법을 잘 지켜내는 의인들, 하느님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고, 잘 섬기고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옹호하고 합리화하며 율법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단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수도생활을 비롯하여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자기 합리화입니다. 스스로를 옹호하고 스스로에게 관대해 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하느님의 뜻을 잘 식별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를 두렵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우리를 율법의 테두리 안에 우리를 가두어두고 율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이 안전한 것이라며 우리를 그 안에만 머무르도록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리고 그 테두리 안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단죄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율법의 완성은 성령의 법이 되는 때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보다 더 자유로운 길로 이끌어 주며, 보다 더 넓은 가치관과 포용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넓은 가치관과 포용력은 율법의 근본정신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가게 합니다. 율법을 스스로 지키는 이들은 율법의 근본정신을 이해하고 또 그것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율법에만 얽매이지 않을뿐더러 하느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 율법을 준수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스스로 지키는 이유는 그 법이 그들을 자유로 이끌어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법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 하루를 보내며 과연 내가 율법을 지키는 이유가 무엇인지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법인 율법은 과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지를 살펴보시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