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나루터 공동체에 첫 미사 일정을 따라 다녀왔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나루터는 지적 장애인 공동체입니다. 그곳에서 미사가 진행되었고, 미사가 끝난 후에는 새 사제들의 안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꾀나 감명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안수를 받는 내내 다들 너무나도 얌전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등장하는 나병 환자가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루터에서의 첫 미사가 생각났습니다. 나병 환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그리고 지적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생각해봅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동네에 지적 장애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모든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성격을 지녔었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그 친구가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 친구와 어울리고 있으면 나도 그 친구와 똑같이 여겨질까 두려웠고, 그 친구가 나를 만지려고 하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도망치곤 하였습니다. 그 친구와 저는 다르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로만 나병 환자를 낫게 하시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직접 손을 대셨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예수님이 손을 대신 이유를 한 사람 안에 있는 불결이 다른 사람에게 옮지 않으며, 외적 불결이 마음의 정결을 더럽히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하느님께 우리는 다 똑같은 자녀로 사랑받고 대우받는 존재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또 기억해야 할 것은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먼저 다가간 용기입니다. 하지만 그의 용기는 단순히 예수님께 다가간 것만이 아닙니다. 그의 용기는 무릎까지 꿇는 것이었습니다. 무릎을 꿇는 것은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병 환자가 깨끗하여 질 수 있었던 이유는 나병 환자가 예수님을 찾아 왔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 나병 환자들이 있는 이 세상에 직접 오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오늘 나병 환자가 깨끗하여지기를 바라셨던 것처럼 우리 모두가 깨끗하여지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느님의 뜻에 순명해야 하겠습니다. 나병 환자에게 직접 손을 대신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해보면서 첫 미사 때 사제들이 안수를 주었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사제들에게 안수를 받는 그 사람들은 결코 다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손을 댈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차별 없고 공평한 세상을 만들어나가는데 일조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