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미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과 함께 할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제자들은 그 부르심에 즉시 응답하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즉각적인 응답이 가능한 것일까요? 각자의 삶과, 이상, 목표 안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따른 다른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자신을 부른다면 말입니다. 제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예수님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갈릴래아 지방을 두루 다니시며 선포하시던 예수님을 직·간접적으로 만나거나 그분의 말씀을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 그 말씀과 행적에 탄복되어 그들 자신들의 삶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변화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씨앗이 자리 잡기 위해서 그들 마음 안에는 수많은 번민이나 고뇌가 가득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 과정을 거치고 씨앗이 자리를 잡은 그 순간 예수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지명하여 부르셨을 때, 그들 안에 있던 성령의 씨앗이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따름은 준비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따라서 예비신학생 모임을 갔던 적이 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간다.’는 말처럼 신부님께 추천을 받지도, 말씀을 드리지도 않고 그냥 따라갔습니다. 막연하게 신부님이 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두어 번 모임을 나갔을 때 어떻게 아셨는지 신부님이 저를 따로 부르셨습니다.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사주시면서 물으셨습니다. “너 신학교 갔다 왔다며? ?” 전 그냥 신부님이 되면 어떨까하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갔다고 말씀드렸고, 신부님은 짜장면과 탕수육으로 예비신학생 모임에 그만가라고 저를 회유하셨습니다. 그래서 전 에사우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았던 것처럼, 저의 성소를 짜장면과 탕수육으로 팔아버렸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성소를 잊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뒤에 다시금 그 성소가 찾아 왔습니다. 우연한 계기가 되어 수도원 성소모임을 다니게 되었고, 그 때 비로써 고등학교 때의 그 일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준비가 덜 되어있는 제 등에 끈을 하나 묶어 놓고 저를 풀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모두 맘껏 해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니 그 끈을 당겨서 다시금 당신 앞에 불러 앉히신 것입니다. 주님은 부족한 저를 채워서 사용하시려고 10여년을 준비시키셨고 때가 되자 부르셨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각자의 삶 안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의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준비하고 기다리는 때가 필요합니다. 시간이 주시는 은총이라는 그 때를 우리는 쉽게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하비다. 기도는 곧 대화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과 대화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그 말씀을 알아듣게 됩니다. 대화하고자 노력하는 그 과정 안에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각자의 모습대로 다양하게 사용하시고자 하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은 고되지만 은총이 가득한 삶입니다. 은총의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겸손하게 준비하는 모습으로 하루를 살아야 할 것입니다. 준비 되어있을 때 주님의 부르심에 곧바로 따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