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운 순례를 마치고 파견 미사로 순례를 마무리~~~




홍주성지에서의 십사처중 7처와 13처!!


[가톨릭 리빙] 순교, 그 삶과 얼 발자취를 따라서 - 홍주순교성지


‘충렬의 땅’이자 ‘순교의 땅’인 홍성. 최근 충남 도청이 홍성군 홍북면에 들어서면서 내포의 핵심 도시로 떠올랐지만, 홍성으로 가는 길은 멀다. 교통 편이 여의치 않아서다. 뜨문뜨문 장항선을 따라 서해 7개 관광지를 운행하는 서해 금빛열차를 타고 가는 게 그 중 편안한 여정이 될 듯하다. 해미와 함께 내포 교회의 대표적 순교지로 떠오른 홍주순교성지는 홍성에 있다. 깊어가는 가을 녘, 홍주순교성지로 떠났다. 순교, 그 삶과 얼, 숨결, 그리고 채취를 느껴보기 위해서다.

길을 걷다가 뒤돌아본 나뭇가지에 가을 햇살이 걸렸다. 혼 속까지 비추는 듯한 투명한 빛이 아련하다.


100여 년 전 한때는 춥고 마음 고픈 생의 긴 겨울 집에서 한파에 숨을 죽여야 했지만, 지금은 명징한 하늘을 즐기는 일만으로도 마음 푸른 가을 녘이다.

지금이야 홍성으로 불리지만, 1914년 이전까지 홍주군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그 이듬해, 일제에 항거한 900 의병의 시신으로 홍주가 뒤덮였고, 8년 뒤 일제는 홍주군을 결성군과 합쳐 홍성으로 개칭하고 억눌렀다.

하지만 이에 앞서 1791년 신해박해 시기부터 1866년 병인박해 때까지 80여 년간 홍주는 ‘순교의 땅’이었다.


순교의 땅에서 영광의 땅으로

천주교 신앙 때문에 목숨을 바친 순교자가 1000여 명을 헤아렸고, 그 가운데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만 212위에 이른다. 이 중 1791년 신해박해로 잡힌 ‘내포의 첫 순교자’ 원시장(베드로, 1732∼1793), 1799년 기미년 박해 때 순교한 방 프란치스코(?∼1799)와 박취득(라우렌시오, ?∼1799), 1801년 신유박해 때 피를 흘린 ‘백정 순교자’ 황일광(시몬, 1757∼1802) 등 4위가 2014년에 시복돼 ‘영광의 땅’이 됐다.

홍주순교성지(전담 최교성 신부) 하면, 도심 곳곳에 내포 순교자들의 증거와 얼이 배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성지 측에선 이들 증거 터와 순교 터를 6개 코스로 나눠 순례지로 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순례 코스가 긴 것도 아니다. 다 평지이고, 총연장 1.5㎞에 불과하다. 천천히 기도를 바치며 걸어도 1시간이면 너끈하다. 빨리 걸으면 30분밖에 안 걸리지만, 그럴 필요는 조금도 없다.

증거 터 홍주목 동헌을 시작으로 순교 터 홍주옥 → 증거 터 홍주 진영(경사당 터) → 증거 터 저잣거리 → 순교 터 참수 터(월계천 북문교) → 순교 터 생매장 터(월계천과 홍성천 합수머리)로 이어진다. 될 수 있는 한 느리게 걸으며 기도하고 묵상해야 그 숨결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가톨릭굿뉴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