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순례


하타나카 수녀  +9TKf83TK+ECo9EJq4AAAAASUVORK5CYII=

 

 주일학교에서는 7월30일부터 8월1일까지 다니엘 신부님이 소속된 서울의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종신서원식 참례와 한국순례 일정이 있었다. 이는, 올해의 복사 캠프 계획에서 발전한 것으로, 아이들을 한국의 성대하고도 장엄한 서원식에 참여시키고자 하는 열의에서 이루어졌다. 3월, 우라카미에서 거행된 서품식에 맨 앞줄에서 참례하고, 신학생들의 모습을 본 친구가 '저도 저런 데서 복사하고 싶어요'라며 성소에 대해 가진 생각을 소중히 키우고자하는 염원이 행동으로 옮겨진 것이다.
  후쿠오카발 비행기는 저녁 때가 되어, 태풍의 영향으로 1시간 지연이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4학년 아이들도 자신들이 여권을 손에 들고 출국, 입국 심사를 받았다. 인천 공항에서 서울로 향하는 창밖 풍경, 주위가 거의 한글로 된 세상에 들어와, 한국에 왔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다. 8시 40분경, 저녁식사 장소인 고기집에 도착. 다니엘 신부님의 서울교구 동창 신부님들이 내주신 현지의 고기와 냉면에 입맛을 다셨다. 열심히 외운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화장실이 어디에요?'까지 튀어나와 모두 폭소. 숙박할 장소인 수도회 피정의 집으로 향했다. 많이 늦었는데도 불구하고 모두 따듯하게 맞아주셔서 고마웠다. 다음날 아침에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피정의 집 현관 베란다에 파라솔과 벤치가 있어, 방문하는 사람들이 맘 편히 있을 수 있게 하고 있었다. 수도회 본부 테라스에도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자연 안에서 안정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튿날, 5시 반 기상. 피정의 집보다 조금 위에 위치한 수도회 본부에 가서, 성무일도와 미사에 참석했다. 많은 신학생들, 수사님들, 신부님들의 기도소리가 하나의 노랫소리가 되어 아름답게 울려퍼져서, 베들레헴의 천사들의 노랫소리를 연상시켰다. 오전 중에는 시내 순례를 했다. 먼저 명동 주교좌성당에 갔다. 자료관은 미사 때문에 보지 못했고, 대성전의 웅장함에 놀랐다. 그 옆에 지어진 가톨릭회관은 5층의 큰 건물로 하나의 회사 같았다. 교회 전체의 각 부서의 업무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 당에서 싹튼 한국 교회는 크게 성장하여, 이제는 그 결실이 나가사키에도 전해지고, 그 은총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성물방에 가서 처음으로 본 십자가 위의 웃는 예수님 얼굴. 따스하게 미소짓는 성모님 등, 한국 특유의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당고개는 한국의 두 번째 신부님의 어머니의 순교지. 젖먹이를 품에 안고 있는 어머니는 한 번 배교하여 그 아이의 생명을 살리려고 다른 이에게 맡기고 다시 돌아와 신앙을 드러내어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 절개 높은 신앙과 어머니의 사랑을 벽에 박아놓은 신부님 고향의 그릇들도 칭송하고 있는 듯했다.
  새남터 성당은 다니엘 신부님의 수도회가 사목하고 있는 서울교구의 유일한 본당으로, 한국의 주교, 사제, 회장 등, 교회의 주역들이 순교한 성지. 고층 빌딩 가운데에 위치하여, 외관은 4중의 탑이 있는 절의 모습이지만, 안에 들어가 보니 지하 강당이나 순교자들의 자료실도 있고, 당시의 모형과 고문 도구들도 있었다. 그것을 본 한 아이가 달려들어, 곧장 자기 몸을 그 위에 뉘었다. 일본의 소년 순교자의 견고한 신앙이 계승되어, 지금 여기에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새남터의 독자적인 성물들이 있는 성물방도 있었다. 대성전은 2층에 있었는데, 제대 좌우의 벽은 한 면으로, 왼쪽은 예수님을, 오른쪽은 성모님을 중심으로 한 순교자들의 조각이 되어 있어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십자가의 길도 등장하는 사람들이 한국인으로 새겨져 있었다. 또한, 성당 앞에는 서원자들의 얼굴이 들어간 큰 현수막이 걸려있어 누구라도 축하 메시지를 적어놓을 수 있었다. 우리도 축하 인사를 적어놓았다.(물론 일본어로)
  오후 2시, 종신서원식이 거행되었다. 주례는 총장신부님. 입당부터 퇴장까지 젊고 청초한 노랫소리가 대성전을 가득 채웠다. 서원자 호명에 '예. 여기 있습니다'라고 우렁차게 대답하고 일어나는 모습이 늠름했다. 강론 후, 바닥에 엎드려 성인호칭기도를 노래했다. 그 다음 종신서원을 발하고, 그 증표로 팔찌를 받고, 복음삼덕을 몸에 두른다는 의미로 흰 도포를 받았다. 이어서 전 회원이 두 사람의 서원자와 포옹하는 것으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다. 어르신들도 젊은이들도 기쁨에 넘쳐 포옹하는 모습은 아름다운 형제적 친교의 광경이었다. 봉헌은 사전에 나누어 준 봉투에 원화를 넣어, 봉헌주머니에 넣었다. 새남터에서 우리를 안내해 준 데레사 자매님도 치마저고리를 입고 봉헌 때 봉사를 했는데 아름다웠다. 퇴장 전에 서원자와 가족들의 소개가 있었고, 성대한 박수가 전해지는 가운데, 옆에 앉은 아이가 "우리도 저렇게 되는 거예요?"라고 말을 걸었다. "응, 신부님이 되면 저렇게 모든 사람들한테 축복을 받는단다." 라고 대답했더니,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넘치는 기쁨으로 가득한 서원자들과 함께, 우리도 기념사진에 모습을 남겼다. 이번 순례의 목적인 이 미사에서, 한 명, 한 명이 큰 은총으로 가득 차, 감동의 소용돌이에 빠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지난 번 서품식 때보다 한층 더 감동하는 모습을 보고, 오늘까지 이끌어주신 하느님께 마음으로부터 찬미와 감사를 드렸다.
  3일째, 수도회 본부 내부 안내를 받고, 서울 대신학교를 방문하고 나서 귀국하는 날이다. 피정의 집에서 아침식사를 할 때, 신학생들도 와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친교를 나눌 수 있었다. 출발할 때, 신학생들이 계속해서 손을 흔들어 배웅해주는 광경은 미래를 향한 뜨거운 성원처럼 느껴졌다.
  수도회 본부에 있는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자상은 오른손에 십자가상을, 왼손에는 부교구장이었다고 하여 사목서한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교우들 보아라. 큰 사랑을 이뤄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사후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란다. -옥중에서- 1846년 8월말'(다니엘 신부 역)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사목자로서의 사명을 다한 강한 신앙이 마음에 와 닿았다. 성당 안에는 세계에 몇 개 없는 파티마의 성모상, 성인들의 유해와 예수님의 실제 십자가에서 취한 십자가 성광이 현시되어 있어, 숭고한 기념관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총장신부님이 보통은 봉쇄구역으로 회원 이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응접실에 안내하여 대접해 주시면서, "여러분들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라고 하셔서, 앞으로 아이들 인생의 걸음걸음에 큰 양식을 주셨다.
  서울의 대신학교는 신학생 200여 명이 공부하고, 일반대학 과정의 시스템이 되어있었다. 넓은 캠퍼스, 대성전의 제대 옆에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었는데, 한국의 모든 성직자들의 수호성인이라고 했다. 그리웠던 이한별 신학생(2016년 여름에 3달 동안 나메시에서 모라또리움 실습을 함)과 만나 교내 안내를 받고 나서 공항으로 향했다.
  이번 순례를 기획하고, 막대한 지원과 온갖 일처리와 준비에 힘을 쏟으시고, 풍요로운 결실을 맺는 순례가 되도록 해 주신 다니엘 신부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우리를 지원하시어 순례를 보내주시고,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며, '성소 페스티발 in 운젠'에 참가하는 어린이들을 인솔까지 해주신 주임신부님의 큰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멀리서나마 기도로 지원해주신 신자분들에게 감사 인사드립니다. 이번 순례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성소를 향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찬미 예수님"



한국에서의 추억


3학년 야마구치 하루토A4YZDdpoKx9bAAAAAElFTkSuQmCC  

 

저는 한국에 3일간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새남터 성당입니다. 나메시 성당보다 컸고, 넓었습니다. 여러 가지 기념물들이 있었습니다. 기념관에서는 순교하신 분들의 얼굴이 디자인되어 있었습니다. 어떻게 처형되었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당고개, 명동성당, 대신학교 등이 있었습니다. 당고개에서는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게 한 아이들이 그려져 있어서 슬펐습니다. 명동 성당에서는 순교하신 분들의 유해가 있었습니다. 대신학교에서는 교황님께서 앉으셨던 의자, 한국 최초의 신부님의 유해가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군데를 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한국에 데리고 가 주신 다니엘 신부님, 하타나카 수녀님, 이나다 신학생, 주일학교 봉사자 분들, 일본에서 지켜봐 주신 야마와키 주임신부님과 신자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한국의 감상


4학년 오카 유이나wEFgPQGlChTvQAAAABJRU5ErkJggg==

 

  먼저 처음으로 보고 놀랐던 것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의 이야기를 듣고 놀랐던 것은, 예수님의 실제 십자가의 조각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봤더니 십자가 형태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은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종신서원식을 본 것입니다. 바닥에 흰 천을 깔고, 긴 성가를 부르는 동안 엎드려 있어서 놀랐습니다. 또한, 신부님이 수사님들과도, 다른 신부님들도 종신서원식을 하신 분들도 함께 포옹을 해서 저는 '사랑을 나누는 거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종신서원식을 하신 두 수사님을 위해 저도 많이 기도해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감사, 고맙습니다


4학년 마츠자키 타이시  


  7월 30일부터 3일간, 다니엘 신부님과 함께 한국 순례 여행을 갔습니다. 출발하는 날, 처음으로 해외에 나가는 거라서 많이 긴장한 상태로 후쿠오카 공항으로 갔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다니엘 신부님이 태어난 곳은 어떤 곳일까?'하고 생각하면서 한국에 갔습니다. 한국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기다렸던 저녁식사였습니다. 다니엘 신부님의 동창 신부님 두 분이 저녁식사를 내 주셨습니다. 아주 맛있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아침기도와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한국 수도회의 아침기도가 노래처럼 들려서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그 후 맛있는 밥을 먹고, 버스로 순례를 갔습니다. 명동 성당은 아주 크고, 스테인드글라스가 예뻤습니다. 다음은 당고개라는 순례지였는데, 한국의 두 번째 신부님의 어머니가 아이들을 남겨두고 하느님께 목숨을 바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에 새남터 성당에 갔습니다. 그곳은 신부님들이나 주교님들이 순교한 곳이라고 했습니다. 하느님께 목숨을 바치는 것은 엄청난 신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후에 두 신학생이 평생 동안 하느님을 섬기기로 약속하는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저는, 하느님께 무엇이든 바치는 것이 아주 훌륭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미사에 참석하고 아주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후에 스파에 가서 목욕을 하고 피자를 먹었습니다. 새남터에서부터 데레사라는 신자 분이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마지막 날, 잠을 잤던 피정의 집 안에 경당이 있어서 그곳에서 미사를 드렸고, 신부님께서 계셨던 수도회를 견학했습니다. 예수님의 실제 십자가가 있어서 놀랐습니다. 그 다음 이한별 신학생이 공부하고 있는 대신학교에 갔습니다. 오랜만에 이한별 신학생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신학생의 수가 많다고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일본에도 신학생들이 많으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신부님이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수도회의 다른 신부님으로부터 '나라는 달라도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 하나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니엘 신부님, 한국에 데리고 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번 일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한국 순례에 대한 감사


6학년 아이카와 잇또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나서 한국으로 출발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침미사와 기도에 참석했습니다. 아주 조용한 미사였습니다. 그리고 신학생들이 아주 자상했습니다. 새남터 성당에서 종신서원식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말은 몰랐지만, 미사의 내용은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과 달랐던 점은, 새로이 종신서원을 하신 분들과 포옹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학생들이 주스와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었습니다. 새남터 성당은 절과 같은 지붕을 하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외우고 가서 말했습니다.
  야마와키 신부님, 다니엘 신부님, 하타나카 수녀님, 이나다 신학생, 미니 버스를 운전해주신 요시다 씨, 주일학교 봉사자이신 마츠자키 씨, 오카 씨, 시노자키 씨, 나메시 성당 신자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여름방학 한국순례를 끝내고


고2 마에다 에리코    


  '순례'라 하면, 일상적인 생활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 성지나 거룩한 곳을 도는 비일상적인 생동인 것처럼 느끼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이번 순례에 참석하기 전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인 양 느껴져서 살짝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현지에 가 보니, 한국교회나 그와 관련된 많은 건축물을 견학할 수 있어서 가슴 뛰는 2박3일이 되었습니다.
  첫날, 태풍의 영향으로 비행기의 이륙 시간이 늦어진다는 안내 방송이 있었습니다, 만, 그 후 예정대로 피정의 집에 도착할 수 있어서 하느님의 가호를 느꼈습니다.
  둘째 날, 아침미사에서 놀랄 일이 있었습니다. 일본의 미사에서 '저의 생각과 말과 행위와 나태함으로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하고 (아마도 그 부분) 하는 부분에서 '생각과 말과 행위'를 이야기할 때, 한국에서는 신부님들과 신자들이 오른손을 가볍게 쥐고 왼쪽 가슴을 세 번 두드리는 것이었습니다.(일본에서는 하지 않음) 일본교회에서는 본적이 없는 동작이었는데, 말에 힘을 주어서 신앙심의 깊이가 더욱 확실하게 전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게 아주 멋있었습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타니 곧 순례가 시작되었습니다. 명동 성당과 당고개 등, 한국 순례를 말할 때에 빠뜨릴 수 없는 건축물들, 그리고 그 내부도 견학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 한국에도 순교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부끄럽게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순교의 극심함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웃나라의 역사에 대해 무지한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종신서원식이 거행된 새남터 성당 부지 내에 있는 자료관에서는, 한국의 순교 역사를 더욱 깊이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의 신자들이 지닌 굳센 신앙 위에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신앙이 세워져 있구나 하는 생각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한 한국의 순교자들에는 여성이 많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종신서원식에는 피정의 집에서 뵈었던 신부님들도, 처음 뵈는 신부님들도 계셨습니다. 많은 신부님들을 이렇게 한 번에 뵌 경험이 없는 저로서는 조금 긴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만, 그런 긴장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정도로 한국의 미사는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일체감'이 엄청났습니다. 종신서원을 하신 신학생들에 대한 축복도 아낌없이 이루어졌고, 수줍음 많은 일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라는 생각을 하는 등 자극을 많이 받았습니다. 둘째 날은 아주 충실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셋째 날, 수도회 본부에서, 보통 외부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 방에도 들어가도록 허락받을 수 있었습니다. 서원식 미사를 주례하신 총장신부님과 그 외의 다른 신부님들과 잠깐이나마 만남을 가진 후, 대신학교에 갔습니다. 제가 상상했던 신학교와는 달리, 식당이나 인공잔디 축구장도 있는 지극히 일반적인 캠퍼스였습니다. 자연이 살아있는 분위기가 아주 좋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2박3일로는 부족할 만큼, 한국의 훌륭한 곳들을 피부로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귀중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앞으로 저의 신앙심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더욱 더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순례에 참가하며


시노자키 타카코 (주일학교 봉사자, 아이카와 잇또의 할머니) 


  나메시 성당에서 모두의 무사함을 위해 기도하고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태풍으로 1시간 늦게 출발했습니다.
  수도회 본부 성당에서 아침기도, 미사... 조용했고 가슴에 남는 미사였습니다. 명동성당은 한국 최초의 교구 성당으로, 한국 가톨릭교회의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명동성당에서는 주일 미사가 오전에 5회, 오후에 5회가 거행되고, 소성당에서는 9시 중고등부, 11시에 초등부(자폐 아이들을 위한 미사)가 있는데, 이 자폐 아동들을 위한 미사에 참석하고 싶었습니다. 당고개 (자료관)에서는 박해, 체포, 처형의 장면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같은 박해가 있었다는 것에 아주 가슴이 아팠습니다. 새남터 성당에서는 훌륭한 제대(감실 위의 어린양과 비둘기 모양의 성령), 그리고 좌우에는 벽 조각이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종신서원식 미사는 일본과 거의 비슷한 미사였는데, 마지막이 조금 달라서 한국답게 박수와 포옹과 환희의 목소리로 아주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미사는 일어섰다가 앉았다가 무릎을 꿇었다가 하는 등 옛날의 미사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미사 중의 말들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기도를 바치고, 미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미사 중, 성당이 좀 추워서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더니, 나중에 한국 수녀님이 살짝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가톨릭 대신학교 성신 캠퍼스에서는 멋진 건물에, 넓은 정원, 내부도 조용했고, 각 교실들도 훌륭했습니다. 거기에 나메시 성당에서 함께 있었던 이 신학생이 만나러 와 주었고, 아이들도 기뻐 뛰는 광경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한국에 오고 나서 다니엘 신부님은 만나는 분들 한 분 한 분 모두 말을 걸어오거나 악수를 청하는 등 모두에게 사랑받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너무나 많은 은총을 받았습니다. 피정의 집에서 식사를 준비해주신 자매님, 신학생들, 서울과 서울 타워, 하루 종일 함께 다니며 안내해 준 데레사 자매님과 그 가족분들, 한국의 신부님들, 수녀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간 3일이었습니다. 나가사키에 돌아 와서, 아침기도, 아침 미사, 마음속에 한 동안 여운이 남았습니다. 순례를 허락해주신 야마와키 주임신부님, 응원해주신 신자분들, 저희를 데리고 다녀와 주신 다니엘 신부님, 하타나카 수녀님 감사드립니다. 마음으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이번 순례로 아이들의 기분, 마음이 조금이라도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하느님의 은총과 잊고 있었던 미사에 대한 감정이 되살아났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순례


오카 히토미 (주일학교 봉사자, 오카 유이나의 어머니) 


  7월30일 주일부터 2박3일의 일정으로 아이들과 함께 한국순례를 다녀왔습니다. 후쿠오카 공항까지 요시다 씨가 버스 운전을 해주셨고, 차 안에서는 아이들과 간단한 한국어 강좌를 하면서 시끌시끌하게 출발했습니다. 태풍의 영향으로 비행기가 1시간 지연되었지만, 19시에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당연한 것이었지만 한국어가 눈을 사로잡고, 한국어가 즐비하여 한국에 왔구나 하며 두근두근 거리면서 서울로 향하는 버스를 타러 서둘러 이동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서울에 도착하니, 다니엘 신부님의 지인 신부님 두 분이 저희를 반겨주셨고, 모두 고기집에서 근사하게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돌로 된 철판, 가위로 자르는 한국식 고기구이를 눈앞에서... 아이들과 함께여서 흥분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피정의 집으로 이동, 첫날이 끝났습니다.
  7월31일 월요일, 졸린 눈을 비비며 5시 반 기상. 6시부터 아침기도와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5분 정도 걸어서 본부 성당에 도착했습니다. 한국어로 하는 기도와 성가가 귀에 기분 좋게 울려 퍼졌고, 말은 달라도 기도하는 마음은 같다는 것, 새삼 기도한다는 것의 중대함을 깨닫게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피정의 집에 돌아와 손수 만들어주신 아침식사를 맛있게 먹고, 순례를 출발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비가 왔지만, 명동성당, 당고개 자료관에 가서 교회의 역사,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남터 성당에 가서 장 수사님과 양 수사님의 종신서원식에 참례했습니다. 미사 끝에 종신서원을 하신 두 분과 신부님들, 수사님들, 신학생 한 분 한 분이 웃는 얼굴로 포옹을 하며 축복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축복을 보고 있던 성당에 모인 모든 사람이 마치 가족과 같이 하나가 되어 소리 높여 기쁨에 가득찬 모습에, 자연스럽게 눈물이 넘쳐흐를 정도로 감동의 도가니였습니다. 종신서원식이 끝나고, 한국의 스파 체험과 서울 타워 관광을 하였습니다. 둘째 날은 데레사라는, 일본어를 할 줄 아시는 자매님이 안내해 주셨고,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아이들도 곧바로 마음을 터놓고 즐겁게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8월1일 화요일, 마지막 날은 본부와 서울 대신학교 내부를 견학했습니다. 신학교 안내를 나메시 성당에서 함께 지낸 이 신학생이 해 주었고, 오랜만의 재회에 아이들도 아주 기뻐했습니다. 이런 일정으로 눈 깜짝 할 사이에 한국순례가 끝이 났고, 일본에 돌아왔습니다.
  한국에 가기 전에는 이국땅에, 여러 가지 불안한 감정이 있었습니다만, 한국에서 만난 분들의 따뜻함을 접하고, 가톨릭 신자가 가지는 마음의 친교를 강하게 느꼈던 순례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의 보호자로 따라 간 순례였지만,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저 자신에게도 귀중한 체험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니엘 신부님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의 응원에 힘입어 한국순례가 실현되었다는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순례가 성소를 향한 어떤 모습, 어떤 연결고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은총 가득한 한국순례여행


마츠자키 치나미 (주일학교 봉사자, 마츠자키 타이시의 어머니) 


  이번 여름, 큰 은총을 받았습니다. 올해 봄에, 다니엘 신부님으로부터, 신부님의 수도회에서 거행되는 한국의 종신서원식에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가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해외여행이라는 것, 당시 한국 사정 등에 불안 요소도 있어서, 가고 싶지만 무섭다는 생각이 솔직히 있어서 갈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모처럼의 다니엘 신부님의 권유이기도 했고, 이건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이라는 생각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가서 보니, 그런 불안한 감정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우리들의 하느님은, 나라가 달라도 유일하신 분이시고, 교회는 하나이며, 말은 달라도 같은 기도를 드리는 것이고, 모두 형제라는 것, 당연한 말이지만, 새삼스럽게 생각이 났고, 실감했습니다. 몇 군데인가 순교지를 도는 동안, 신앙의 굳셈과 깊이에 감동했습니다. 성당 건축이 절과 같은 한국의 독자적인 건물이라는 점이 매우 보기 드문 점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외에도, 스테인드글라스가 아주 크고 아름다운 성당이나, 여러 가지 거룩한 전시물들이 성당을 장식하고 있어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우리가 머물렀던 수도회의 아침기도가 너무나 매끄러웠고, 전체가 아름다운 노래 같아서 듣고 있으면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우리를 따뜻하게 환영해주시고, 대접해 주신 다니엘 신부님의 동창 신부님들을 비롯하여, 신학생들과 신자분들 덕분에 무사히, 신나게, 그리고 맛나게 지낼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수도회의 신학생들과 아이들이, 말은 통하지 않는데도 곧장 친해져서, 그리고 귀여워 해주셔서 아주 즐거웠습니다. 정말 훌륭한 추억이 된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 평생을 바치기로 약속하신 종신서원식에 참여할 수 있어서, 저도 아이들과 함께 그리스도교 신자답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성소의 은총에 응답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한국에서 보낸 3일간은 아주 의미 있는 날들이었습니다. 다니엘 신부님, 데리고 가 주셔서 고맙습니다. 무사히 다녀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신 야마와키 신부님, 신자분들, 감사합니다. 함께 여행했던 하타나카 수녀님, 이나다 신학생, 아이들, 주일학교 봉사자들과 함께 보낸 3일간의 추억과 경험을 평생 소중히 간직하고, 앞으로의 신앙생활을 걸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은 갤러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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